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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02. 2023

기도 83-1

새해 축하드려요, 그리고

2023, 0102, 월요일



´선생님 새해 축하드려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


23년 토끼해에 맨 처음 받은 인사였습니다. 아침에서야 봤습니다. 열두시 조금 지나서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누구나 받아보는 그런 인사였지만 저에게는 특별했습니다.




그날은 2020년 10월, 하늘이 맑은 개천절이었다.




¶ 10월 초 서해 격포항.


바다에도 곧 가을이 들 것을, 그때 파란 바탕에 붉게 물든 단풍은 얼마나 예쁠까.




인후는 산이한테는 한 살 어리고 강이한테는 한 살 많다. 대충의 관계로 서로들 친하다.


그래, 대충의 관계는 보기 좋은 것이로구나. 물 한 모금 건네고 받아 마시는 사이가 홀가분한 맛이 있어 좋다.


내가 보는 저희는 얼마쯤은 이기적이고 얼마쯤은 동화적이면서 또 어느 만큼은 하나의 도형을 이루는 면이나 꼭짓점 역할을 한다. 이런 것을 올망졸망이라고 그랬던가.


스무 날 지나면 부산으로 이사를 가는 인후와 산이 강이는 아웅다웅 이별 여행을 하고 있는 줄 알기나 할까.


다시 보기 어렵다는 말이 그들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화폐 같다. 전혀 아쉬움이 없는 표정으로 대신 조금 힘든 얼굴로 5시간을 걸었다. 같이 있어야 모양이 갖춰지는 트랜스포머 스타일의 관계론을 열 장쯤 읽은 느낌. 아빠는 무슨 생각인 줄도 모르면서 생각하느라 더 웃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었는데 너희는 생각 따위는 던져놓고 바람보다 먼저 웃고 바람보다 먼저 까불거린다.




갑자기 이사를 가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부모도 아이들도. 그렇게 헤어지면 쉬 만날 수 없을 것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후를 꼬셔서 하룻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었지만 사실은 내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저는 인후를 좋아했으니까요. 그 조그만 아이가 쫑알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한동안 생각났었다고 이제서야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나보다 마흔 살쯤 어린 사람에게 정을 줬는데, 그 사람이 멀리 떠나간 것입니다. 그 뒤로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나 봅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지내더니, 저도 그리운 것이 떠올랐던가 봅니다. 그런 그림이 좋습니다. 2분 정도 가만히 머물게 하는 그림이나 문장, 순간들을 저는 수집하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운을 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몸이 좀 불편한 것이야 늘 있는 일이니까, 거기에 마음까지 빼앗기지 않을까 합니다. ´보고 싶다´는 말이 쉬운 말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꼭 그 말밖에 없더라는 것도 아니까요.


나도 좀 잘 돼서, 인후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러면 또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31일 저녁에는 식탁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짧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기 스스로 이거 하나는 잘했다 싶은 거 하나,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이 잘했다 싶은 것 하나, 그때마다 15초 동안 손뼉을 쳤습니다.


애들 엄마 : 정말 꾸준히 운동을 했다!


(박수)


강이 : 수학을 좋아하게 된 것!


(박수)


나: 책을 150권 이상 본 거 같은데!


(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


산이 : 잘한 것 없는데...


(박수)




자, 옆에 있는 사람이 잘했다 싶은 거.


애들 엄마 : 강이는 학교에서나 성당에서 자기 맡은 일을 성실히 하더라고.


(박수)


나 : 엄마는 회사에 꾸준히 나가더라.


(박수)


산이 : 아빠가 가출하지 않은 거.


(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


강이 :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오빠는 얼굴만 봐도 웃겨!


(박수)




날이 또 금방 흘러갈 것입니다. 흘러가고 나면 아쉬운 것들뿐인 듯합니다. 그 아쉬움이 아로새기는 결과 결, 그래서 늘 결정적인 순간들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그리고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추신 -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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