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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29. 2022

기도 81-1

나희덕

2022,1229, 목요일



내가 멈췄던 것은 그 말 때문이었습니다.


시를 잘 쓰고 시가 좋다는 말도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치지 않을까 막연히 그 생각했었는데 그때 좀 멈췄습니다.




북향 언덕의 토끼 이야기를 하다가, ´그러면서 나는 보육원 울타리 속에서 유난히 길고 긴 겨울을 보내던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가보기도 한다. 에덴 보육원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쪽은 식당 앞 공터였다. 우리가 옹기종기 기대어선 담벼락에는 겨우내 개나리가 몇 송이씩 피어났다 얼어버리곤 했다. 영양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던 우리는 입가에 늘 부스럼딱지를 달고 다녔는데, 어떤 영양분보다 하늘이 보내주는 햇볕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우리는 식당 앞 양지에 늘상 죽치고 있었다. 마치 북향 언덕의 토끼들처럼.´




노래방에 언제 갔었나 싶습니다. 사람이 노래라도 가끔 부르면서 살아야지 싶으면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노래 실력과는 별도로 노래방을 나오기 전에 불러보는 노래, ´귀뚜라미´는 그녀의 시였습니다. 20대에 주로 불렀던 노래, 그 노래가 한 편의 시였다니, 반가움도 잠시 ´나희덕´이란 이름을 확인했던 날, 얼굴에 열감이 돌았습니다. 그랬었구나. 시였었구나. 이 여자였구나····.




¶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울음소리는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귀뚜라미 / 나희덕




술 마시고 불렀고 밤길을 혼자 걸으면서 불렀으며 자취방에서 또 들었습니다. 젊음은 그렇게 무모한 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쯤 궁금했을 법한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 지금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습니다. 이름을 들춰서 확인하고 싫었던 것입니다. 잘 쓰는 사람들이 그 시절에는 화살이 날아가 명중하는 표적지 같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들꽃 같은 이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질투나 부러움은 아닐 것입니다. 나희덕 시인은 들꽃 같습니다.




그녀가 고아원에 살았지만 고아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저 물을 먹고 자란 꽃이라면 그윽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공동체를 배웠다고 합니다. 부모의 신념에 따라, 어린 그녀도 고아들과 함께 어울려 자랐다고 합니다.




해미 읍성도 그녀의 소개로 찾아갔던 길, 시인은 길을 일러주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안 가봤으면 거기 가보라고 친절하게 가리켜주는 방향입니다.




그 북향 언덕의 토끼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영하 몇십 도의 추위에도 온실 속에서 꽃들은 만개하고,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서 짧은 소매를 입고 겨울을 나는 오늘날, 누구도 봄을 간절히 기다리지는 않는다. 온실의 안온함 속에서 북향 언덕의 토끼와 같은 봄의 파수꾼은 사라져 버렸다. 여느 해처럼 겨울은 지나갔으나 겨울을 뼈저리게 겪어낸 이는 많지 않았다. 봄은 왔지만 그 소리 없는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불감증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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