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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1. 2023

기도 91-1

Your Japanese Mother

2023, 0111, 수요일



궁금할 때가 있긴 합니다.


누가 이것을 다 읽을까.


그런데 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많습니다. 책을 살 때 여전히 기분이 좋습니다. 왜 좋을까, 스스로 묻곤 합니다. 오래 두고 볼 동행이 생긴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죽이기´는 로드 맥퀸 Rod McKuen의 And to each season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책 제목을 하나씩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때 떠오르는 아스라한 기억들을 좋아합니다. 커피색이 시간과 기억 사이를 물들이면 영락없이 무장해제가 되고 맙니다. 만약 내가 손을 뻗어 만져보는 책이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샀던 날, 샀던 공간으로 훌쩍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날의 공기를 마십니다. 그래서,




그래서 다 읽지 않아도 고마운 것을 압니다. 갖고만 있어도 - 나는 그것이 정성 같아 보입니다. - 언제, 우리는 마주칠 거라는 거. 늙지 않는 말, 시들지 않은 문장, 여전히 그날의 풍경을 품고 있는 표지와 제목과 페이지들 그리고 내 사연 - 노사연이 아닙니다. - 내 나의 사연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되새김질하면서 유쾌하게 호흡합니다. 올해는 몇 년 전에 구입했던 폴 오스터의 장편들, 15권을 챙겨서 길을 떠날까 합니다. 근사하지 않습니까. 잊지 않고 부담스럽게 여기지도 않았다고 싱그럽게 대답하는 나는 흩어질 것만 같습니다. 가벼워서 홀가분해서 바람 같아서.




제가요, 그러니까 제가 어디 가면 종종, 자주, 가끔, 어쩌면 늘, 항상, 언제나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 같지 않아요. ´


좋아하는 편입니다. 왜 그 말을 좋아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규슈 어딘가 출신 아니었냐고 반문하고, 중국 사람들은 정말, 한족인 줄 알았다고 손뼉을 짝 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동남아 사람들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편이지만 특히 서남아시아, 중동 계통은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홧?


네팔, 인도, 파키스탄, 군부 쿠데타로 혼란스러운 미얀마에 사는 소나인도 자기 나라에 오면 ´먹어줄´ 거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습니다. 요르단이나 이집트, 이스라엘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이란 출신의 노동자도 희미하게 기억이 납니다. 모두 먼저 다가와 저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같이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며 저를 반겼습니다.


미국에서는 ´하와이´ 출신 아니냐고 그러길래 또 웃어줬습니다. 하여간 ´백인´ 그 범주 밖에서는 어디든 저를 가져다 놓아도 그럭저럭 ´먹히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저는 그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 They will send the Indians to India,


Send the Africans to Africa,


Well, somebody please just tell me


Where they´re sending poor me, poor me?


Because I´m neither one or the other,


Six of one, half a dozen of the other,


I really don´t know what will happen for true,


They´re bound to split me in two!


- "The Mighty Dougla"




유명한 칼립소 하나입니다. 저도 잘 모르는데 소개는 하고 싶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도인은 인도로, 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가엾은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난 인도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니지만


인도의 피도, 아프리카의 피도 1/6씩은 섞여 있다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모르겠네


아마 나를 둘로 쪼개 버릴지도 몰라!




언젠가 미국 대학 입시에서 쓴 에세이를 하나 읽은 적이 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나라 출신의 고등학생이 쓴 글이었습니다. 자기 안에 흐르는 다양한 인종적 흔적 덕분에 - 그 친구는 ´덕분에´라고 썼습니다. - 인생에 관하여,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종교에 관해 남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에게 공감하고 동의했습니다. 나는 그와 비슷한 뜻에서 ´언어´를 좋아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배워서 까불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게 있다면서 마구 웃겨 주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으면 옆에서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발음은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열심히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 모두 그랬습니다. 서투른 영어로 요세미티에 가는 버스 안에서 내게 자기의 젊은 시절을 들려줬던 야스코이즈미 씨를 잊지 못합니다. 그녀는 내 일본인 엄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톈진에 사는 왕강은 하나밖에 없는 한국인 펑유 朋友라며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늘 대충 불렀던 샤오샤오, 그래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학기가 끝나는 날에 자기 이름을 써주며 제대로 불러보라며 웃던 모습은 또 내가 잊을 수 없습니다. 푸젠성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의사라고 그랬었는데요.




르헤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거기에 ´나´는 없는 것이다. 즉 "나는 죽은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란 ´무아´라고 명명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그때마다 연기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나´들, 그 모든 ´나´가 되며 펼쳐지는 과정이다.


-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218p




아, 즐거운 일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도 시작했습니다. 어제와 다른 ´나´로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나´로 이렇게 다시 앞에 앉아 있어서 좋습니다.



추신 - 사진 동봉합니다.


야스코이즈미 선생님을 처음 봤던 것은 미국에서였습니다. 그녀는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무척 바라고 계실 겁니다. 희미해졌지만 파란 색연필로 보이는 거기 Your Japanese Mother라는 말이 보입니다. 30년 가까이 된 편지입니다. 이즈미 선생님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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