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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24. 2023

어른 김장하

저절로 흐른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 내 눈에 흐른다. 저 물빛이 흐른다. 밖은 추울 것이다. 분명 춥다. 차가운 공기가 우리 사이에 울울한 창끝처럼 뾰족할 것이다. 나는 숨을 쉬고 싶어 한다. 날카로운 것으로 한 잔, 한 모금씩 살살 입에 머금고 삼키고 싶다. 흐르는 것에는 사연도 많고 사연 많은 것들은 오래 날지 못하고 오래 날지 못하면 가고 싶은 데까지 갈 수 없으니까 가장 무거운 것은 여기 떨어뜨려놓고 다시 흘러라. 지켜 서서 그 사연에 물을 주고 날개가 돋거든 너 간 데를 손으로 일러주리라. 다만 오늘과 내일은 많이 춥다고 하니 몸을 아껴 쉬었다가 흐를 것을 권한다. 내 집으로 가라, 거기에서 나는 너를 위해 연주를 한다.

만약 춥지 않았다면 산청군 단성면 운리 버스 정류장 앞에 차를 세우고 참나무 숲길을 총총히 걷고 있었을 것이다. 참나무 숯이라고 하는 그 나무들, 나이 육십이 되기 전에는 자연스레 알게 될까. 숲에는 참나무가 많기도 하지만 참나무는 사실 없다. 나는 참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졸참나무의 깊은 주름이 손에 닿는 날에는 늘 생각하고 떡갈나무나 상수리 정도는 알 것 같으면서도 혼자서만 알지, 애들한테도 말해 줄 자신이 없다. 굴참나무껍질로 지붕도 만들었다는 이야기며 갈참, 졸참 그런 병사들의 계급 같은 이름들이 내내 숙제로 남아 있다. 나는 산에 다녀도 꼭 쌍둥이 조카들을 대하는 것처럼 뜸을 들여 말을 걸고 아는 체를 한다. 네가 그거냐? 네가 그거지? 그래, 신갈 나무라는 것도 참나무에 속한다.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나에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지리산 둘레길을 가지 못했다. 날이 추우면 황금 같은 휴일도 힘을 못쓴다. 그러니 살면서 얼마나 운이 좋아야 하는가. 오호 슬픈 것들, 그림자가 떠나간다, L'Ombre S'enfuit*. 우리 같이 듣자. 우리 같이 슬프자. 머물렀다가 흐르기로 하자. 1월에는 파란, 파아란 싹이 눈처럼 내린다. 아래에서 위로 내린다. 땅 밑 먼 데에서부터 종을 울리며 세상에 내린다. 무거운 문을 연다. 야누스의 문이 열린다. 전쟁, 추위는 덮고 생명은 깨어나는 몸부림, 당찬 화합이다. 화끈한 포옹이며 입맞춤이다. 전쟁이 열렬하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의 싸움은 어디까지나 개념에 지나지 않고 터무니없으며 허황되다. 나는 숲에서 펼쳐지는 저 상큼한 전쟁에 귀가 흥겹다. 걸음이 가볍다. 촉새가 되어 이 산에 있던 전투를 저 산에 가서 떠들고 전령처럼 나무에게, 바위에게, 뽕나무 상황버섯에게도 알린다. 봄이 올지도 모른다고. 몸조심 하라고. 하늘의 기운을 잘 살피라고.

새벽에는 세 번 깨어 세 번 다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가 허벅지에서부터 다리 전체가 내 다리이기를 포기하려는 마지막 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끙, 그 소리가 절로 났다. 높은 물가에 사람이 휘둘리다가 마침내 혀를 내두르며 명절 음식 장만을 하고 그것으로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도 먹고 떡도 먹고 술도 전도 갈비도 홍어 횟감도 즐겼으리라. 친구도 만나고 친척 일가도 처가댁에도 들러 인사를 했을 것이다. 졸업과 입학, 승진과 은퇴 같은 이야기, 연금도 정치도 몸 아픈 것과 죽음 같은 이야기도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날이 하루쯤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던가. 아픈 배를 문질러 가면서 무엇을 먹었던가 따지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가 더듬었다. 혹시 내가 배 아팠을 만한 것이 따로 있었던가.

철학자 김진영 선생의 애도 일기 121번째, 144페이지에 있는 말을 다시 눕기 전에 펼쳐 읽었다. 거기 이렇게 쓰여있다.

¶ 내 안의 텅 빈 곳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녔던 세월이 나의 인생이었다. 도서관을 헤매던 지식들, 애타게 찾아다녔던 사랑들, 미친 듯이 자기에게 퍼부었던 히스테리들, 끝없이 함몰했던 막막한 꿈들 ······

이 뒤에 나오는 문장은 진주에 사는 '어른'을 소개하고 다시 잇기로 한다.

나를 아끼는 말들을 나는 알아보는 나이가 됐다. 어제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 띄어쓰기도 없이 급히 써보낸 카톡 메시지- 엠비씨어른김장하보셔요- 내가 사랑하는 말투다. 햇살처럼 투박하고 밝고 낭랑한 울림, 마치 아동 문학가 정채봉 선생이 사랑했을 거 같은 풍경들 속에 꼭꼭 숨어 있을 거 같은 순박한 마음.

내가, 영화 '영웅'을 보고 무엇을 아쉬워했던지 말하지 않았는데 다큐 2부작 '어른 김장하'를 보고 맺히는 것이 있었다. 둘 다 영웅을 소개하였지만 감동이 다르다. 하나는 소리 높였고 하나는 잔잔했다. 둘 다 흘렀지만 하나는 다다랐고 하나는 계속 흐를 것이다. 영웅이 어른이 되는 세상이 아름다울 거 같았다. 어른이 영웅이 되는 세상, 미안하지만 어떤 여인이 화면 반쪽에 어른거렸다. 나는 깨끗하게 살지 못했기에 그 여인이 나처럼 서러웠다. 어른 김장하는 말한다. 부족했다고 그리고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겠다고. 사는 일이 그래도 부끄러운 일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다시 살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연하게 살을 세상에 맞대고 살아야 그 부끄러움을 모두 감각할 수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어른 김장하'를 오늘까지 다 보고 그 떨림이 가라앉기 전에 뭐라도 내놓을 것이 없는가 하고 찾느라······.

"아픈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호의호식할 수 없었고 함부로 쓸 수 없었다는 어른의 말이 나를 토닥거린다. 냉정하고 차가운 물세례라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 텐데 어른의 눈빛과 음성은 한없이 고요하다. 나는 부끄럽다. 나는 숨고 싶다.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른 김장하의 텅 빈 가슴을 본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의 말을 좇는다.

¶ 그것들은 모두가 이 텅 빈 곳을 채워서 그 바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텅 빈 곳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제 또 무엇이 내게 남아 있는 걸까. 무엇으로 텅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걸까. 이제 남은 시간은 부족한데 과연 나는 그 텅 빈 곳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 中 144p.

무엇으로 그 '텅 빈' 것들을 채우겠는가.

내 물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르게 묻는다. 무엇을 '텅 빈'으로 가질 것인가.

빈, 수많은 것들이 거기 들어왔다가 나갔을 것이다. 빈 집, 빈 방, 빈 마음을 채우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빈'이다. 어른 김장하는 말한다. "돈은 똥과 같아서 그냥 쌓아두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거름이 된다."

'비어 있는' 것으로 '비어 있는' 것을 채우는 사람이 성자다. 그런 사람이 교육자며 의사다. 어른이다.

낮이 되면서 볕이 다정하고 공기는 다소곳해졌다. 창가가 따사롭다. 나는 어느 산모퉁이를 돌았는가. 바람이 숭숭 귓전을 울린다. 그래도 좋은 것은 흐르는 것, 너도 살고 나도 살아 있다는 것. 아직 우리가 비워낼 것이 많다는 것과 흐를 곳이 남았다는 것.

애도 일기 그 옆 페이지, 122번째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

* Tino Rossi, Tristesse(슬픔)이란 노래의 부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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