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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21. 2023

영화, 영웅

누가 죄인인가



못 쓰는 것, 되다 만 것, 불발탄 같은 존재가 dud다. 영화, '영웅'에 대해서 쓰려다가 컴퓨터 자판에 한글 대신 dud가 떴다. 한글 '영'을 영어로 치면 dud가 써진다. 낯선 단어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말, 오랜만이다. 나는 dud였었다.

응칠이, 그는 안응칠이다.

친구들이 안중근이라고 할 때 나 혼자만 아는 비밀처럼 그의 이름을 꼭꼭 숨겼다. 그것이 행복했다. 내 어깨를 한 뼘쯤 북돋워주는 것 같아서 룰루랄라 즐거웠다. 누구 청산리 전투 꺼내봐라, 유중권 씨의 딸 유관순에 대해서는 알까? 안응칠이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은 아이라는 거, 어릴 적부터 측간에 갈 때마다 그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에 주먹질을 해야만 했다는 것은 알까? 종이를 거기 줄에 매달아 놓고 그것을 주먹으로 때려 떨어뜨린 다음에야 볼일을 봤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내 안에서는 사금파리처럼 돌올했다. 반짝, 그 정도가 아니라 번쩍였다. 칼 같았고 무엇이나 막아줄 수 있는 내게는 없는 형 兄 같았다. 나는 안응칠이 형 같았다. 옛날에 살았던 형. 그 형이 사냥도 다녔다고!

무슨 일이라고 해야 하나, 어쩐 일이냐고 해야 하나.

그래도 뭔지 알 것 같은 구석이 있어서 모르는 척, 그러자고 좋다고 반겼다.

"영화 볼까요, 영웅?"

아내는 그런 말 못 하는 타입이다.

'우리'

나는 일부러 문장을 만들어 본다.

'우리 영화 볼까요, 영웅?'

그러니까 영화 보자는 말은 나만 했던 말인데,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영화 보러 다녔다고 그러면 혼날까. 욕먹을까. 사실 아바타가 보고 싶긴 했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바쁘다 보니 책 한 권 읽는 것도 버겁다. 간신히 1월에 두 권을 구워 먹은 듯싶다. 맛이 좋은 건 말할 것이 없지, 허기는 최고의 반찬이 맞다. 아바타가 영화관에서는 끝났나? 그것도 묻지 않고 '영웅'을 보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7시 반, 시간도 공간도 나도 안성맞춤이다. 좋다, 가자.

하나 더, 아내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를 위해 정확히 짚자면, 그녀는 일본의 대동아 공영, 침략 전쟁, 제국주의와 침탈을 무서워하고 혐오한다. 역사를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아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밖이 추었다. 대한 大寒 추위가 슬슬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영화관까지 걸어가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민족과 국가, 총성이 나오는 스토리는 피가 등장하니까, 핏물에 물들지 않을 수 없으니까 나는 살짝 바람을 빼줄까도 싶었다. 급속 냉동이라도 될 것처럼 밀도가 낮아지는 공기 분자들, 벌써 움직임이 제로에 가까웠다. 곧 수축될 것이다. 응결, 거리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응칠이는 차가운 사람이 되었을까, 그는 어디에 잠들어 있을까. 만주 벌판, 홍범도 장군의 시선이 끝나지 않던 곳에서 안중근이, 자식을 셋이나 둔 아비가, 홀어머니와 젊은 아내를 고향에 두고 온 젊은이가 무릎 꿇고 단지 斷指 맹세했던 시베리아 설원까지 나는 무감하기가 어렵다. 울음이 났다.

조 마리아, 안중근의 어머니, 나문희, 세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전주에는 시립 도서관이 딱 하나뿐이었다. 금암동 언덕배기, 옛날 KBS 건물이 있던 곳. 거기 도서관 1층 로비 한쪽 벽에 안중근의 글씨가 기다란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

그야말로 도서관에 어울리는 글귀였다. 거기 안중근이라고 쓰고 먹에 찍은 손바닥, 짧은 약지는 어린 나를 어디로 이끌었던가.

가시나무 형, 가시나무 극이라고 읽는 저 마지막 두 글자를 잊고 살던 날들이 있었다. 공부가 게을렀던 것이다. 형극, 그것을 잊고 '벌침'이라고 제멋대로 지어 붙였다. 벌침 罰針, 내게는 형벌 같았던 뾰족한 침.

그 어릴 때도 조 마리아의 편지는 읽는 사람을 우두커니 서 있게 만들었다. 심장이 뛰었던가, 잠시 멈췄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다 고요해졌다. 그 말을 어제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울음이 났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이를 먹어온 것이 맞다. 어미의 슬픈 탄식과 자식의 서늘한 눈빛이 하나로 울렸다. 찬 공기를 뚫고 멀리 시베리아 벌판에서 내 귀에 닿았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은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 조 마리아 여사의 아들 중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두루뭉술하게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율법 학자도 제사장이나 대사제가 나오는 사두가이파도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과도 닮지 않았다. 그들은 부처님께 등불을 바치던 가난한 여인 난타 難陀이며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하고 공손하던 사마리아 여인이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 렙톤 두 닢을 봉헌함에 넣고 돌아서는 여인, 아들을 십자가에 바친 여인, 나는 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안중근에게도 있다.

"나의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형을 집행하는 관리들도 앞으로 한일 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기보다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을 추억했다. 어쩌면 이것 또한 영화의 품격일 것이다. 피가 낭자했다. 그 밖에 것은 좋았다고 기록한다. 특히 누구 하나 열심하지 않은 이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김승락의 일본어는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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