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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26. 2023

기도 100-1

부디 즐거운 여행입니다

2023, 0126, 목요일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언제입니까.



하나 즐거운 그러면서도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닌 고민이 있습니다. 그 고민은 날마다 커질 것입니다. 마침내 제 토양을 견디지 못하고 터진다면 나는 가능한 폭발음이라도 꼭 참아볼까 합니다. 소리만큼 폭발은 강렬할 것입니다. 그러니 소리를 제거할 것입니다. 물속에서 아이를 낳는 것처럼 부드럽게 살살 달래면서 전달할 것이 있습니다. 움푹 파인 진원지는 남아도 그래서 지구 반대편 모래사장에 앉아서 놀고 있는 연인들의 발목에 내 진동이 가닿더라도, 오후 3시 5분에서 6분으로 넘어가는 그 표정 가운데 하나로 남고 싶습니다. 늘어졌던가, 날았던가 싶은 나른한 시간 속으로 내 폭발은 수장 水葬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문체는 한결같을까. 매일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 짙어집니다. 글씨는 사람을 아주 조금 대변합니다. 생각도 음식도 옷도, 자동차도 친구도 그 사람을 얼만큼씩은 드러냅니다. 지분으로 설명하면 더 쉬울 듯합니다. 문체 文體는 말투보다 치밀하고 투명하며 끈질깁니다. 나의 대주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가볍게 아무 데나 쓸 일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 생각이 하나 닿습니다. 구원은 아무 데나 있어야 합니다.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에도 남미 콜롬비아의 메데인에도 여름만 되면 홍수가 져서 사람이 죽어나는 브라질 바카바우 같은 곳 그리고 강남구 구룡마을에도 구원은 있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데는 아무 데나 구원이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역할이며 꿈이고 바람이지 않겠습니까. 쓰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구원입니다. 쓰면 먼저 내가 구원받습니다. 나는 내가 쓴 것으로 전쟁에서 돌아옵니다. 귀환하고 귀향합니다. 자신을 쓰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며 기도가 깊어지고 넓어지면 자기가 없어집니다. 자기 磁氣는 끌어당깁니다. 온갖 쇠붙이를 갖다 붙입니다. 자기가 센 자기 自己는 자기를 이기지 못합니다. 둔해집니다. 그것을 막강하다고 이해하는 것은 억지스럽습니다. 과연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 디오니소스에게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미다스가 될 것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들이 다 자랐다 싶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가 쓴 자기들의 일기를 언제쯤 편하게 보게 될까요. 나는 그날이 먼 훗날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거기 잘 쓰여있기를 소원합니다. 고해소에 들어가서도 미사여구로 자신을 치장하는 죄인은 없을 겁니다. 변명하려는 사람은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법정에 가자고 따질 것입니다. 내 문체는 고해소를 하나 품고 있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쓴 것 같고 아이가 쓴 것처럼 얇으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천을 상상합니다. 그러니 내 문체는 어느 계절에 입으면 더 좋을까 생각합니다.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그 옆으로 냇물이 흐를 것입니다. 완주군 고산면에 가면 그런 풍경이 있습니다. 또 많이 있을 것입니다. 네팔의 외딴 산골 마을에도 태국 피피섬 해변가에서도 그리고 다른 곳에도 아주 많이 있을 것입니다. 거룩한 순간으로 변하는 시간, 내가 나를 적는 시간이 곳곳에 있습니다.




어디를 갈까 잠을 자면서 찾고 눈을 뜨고 그립니다. 무엇을 쓸까 운전을 하면서 궁리하고 길을 걷다가도 멈춥니다. 내 여정은 그랬으면 합니다. 쓰기 위해 가고, 가기 위해 쓰는 삶. 그것이 고백이어도 좋고 통회라면 더 좋은 길. 구원은 나의 일이 아닙니다. 나는 나를 구원하지 않겠습니다. 못합니다. 나는 그저 믿기로 합니다. 잘 믿는 거, 그거 하고 싶습니다. 아니 되고 싶습니다.




부디 즐거운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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