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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27. 2023

기도 101-1

여기에 그림 하나

2023, 0127, 금요일



은유를 품고 있는 것들은 부드럽습니다. 은유로 덮은 것들은 따스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졌지만 예수님은 하나의 은유입니다. 전쟁도 은유를 만나면 살기를 잃고 사람의 얼굴을 되찾습니다. 얼음이 진 호수에 돛배가 노를 젓는 상상은 은유가 하는 일입니다. 은유가 없으면 처마 끝의 고드름이 날카롭기만 합니다. 삶이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그 순간 꽃이 핍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라던 사람*은 과연 어땠을까요.




¶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1




유리창에 얼음이 지는 추운 날에는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는´ 내가 있습니다.


그는 아들을 잃고 많이 수척해졌을 것입니다. 마음이 길을 다 잃고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호수같이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늘 호수를 만나면 밤에 홀로 유리창을 닦는 그를 데려옵니다. 환한 낮으로, 따뜻한 봄으로, 파란 물결 위에.




그가 슬픔을 알기에 그의 낭만과 향수에 나는 주저 없이 빠집니다. 온통 혼까지 내어주고 푹 젖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픔을 거르고 깨끗하고 맑은 은유를 권하는 사람들. 상실을 보이지 않는 실로 꿰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애쓰는 사람들. 몹시 추워서 몸이 떨리는 날에는 그 사람들을 그립니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터서 자라는 겨자씨 같은 사람들을 불 옆으로 불러냅니다. 여기 앉아서 나하고 같이 있어주세요.




그러고 은유를 배웁니다. 하나씩 불속에 넣고 우리는 따스해집니다. 사발이 되고 그릇이 되고 화병이 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불기운을 먹고 이야기가 담긴 흙이 사람이 됩니다. 거기에 무엇을 담아 쓸까 싶습니다. 술일까, 꽃일까, 아니면 고사리나물이나 콩나물일까. 새금새금한 빛깔을 뽐내는 김치도 청량한 동치미도 알뜰하게 미소 짓습니다. 나를 담아라, 날 닮아라, 그러는 아침입니다.




나도 은유를 입어봤습니다. 잘 접어 놓겠습니다. 그림이 하나 그려진다면 멋스러울 것도 같습니다.


누구,


여기에 그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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