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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28. 2023

기도 102-1

그것으로 먹고사는

2023, 0128, 토요일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아는 척하셔도 돼요. 저,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잖아요."


스토킹으로 지목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기록이나 수집, 모음이기를 바랍니다. 저도 무용한 것을 아껴서 바라봅니다. 지난해 12월 15일은 목요일이었고 그날 아침도 FM 라디오 클래식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잘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 분재를 대견하게 바라보던 참이었습니다. 10시 20분, 음악이 멈추고 목소리가 공간으로 퍼졌습니다.


´저,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잖아요. ´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스무 살에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는 인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서른에도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마흔이 되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 떳떳하고 싶었던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더 묻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살기만 했습니다. 내가 먹고산 것들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되었나. 눈이 녹는 소리를 내었던가, 꽃이 피는 혹은 꽃이 지는 동작이라도 되었던가. 오래된 책꽂이가 뜬금없이 앓는 소리를 냅니다. 저도 허리쯤이 아픈가 봅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몰래 아니면 혼자서 먹고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표정을 나도 모르게 살핍니다. 내가 가장 약한 순간은 맑게 웃는 사람 앞입니다. 그 웃음이 사진 속 얼굴에 핀 것이어도, 수십 년 된 웃음이어도 나는 부러워합니다. 예쁘다거나 좋다거나 멋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오래 그 모습이 남습니다. 웃음이 편하게 보이는 노년을 좀처럼 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 없구나.




무엇으로 먹고살지 내 선배들도 후배들도 친구들도 모두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부자도 부자가 아닌 사람들도 그것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런 말 한 번 할 수 있을까. 나 이것으로 먹고살아요. 그 말이 편하게 나와야 할 텐데 저도 걱정입니다.


나는 아직 기대를 내려놓지 않았는가 봅니다. 그것은 믿음일까, 욕심일까 궁금합니다. 내 자식에 대한 기대, 내 주변에 대한 기대,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는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지 말이 참 적습니다. 심술궂습니다. 따라오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통변이라도 해주는 이라도 있다면 속앓이라도 덜할 텐데 말입니다.




아직 해본 적 없는 그 말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삼고 가볼까 싶습니다.


´저,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잖아요. ´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올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돌이 되는가 봅니다. 흙이 비바람을 맞고 뭉치고 굳어서 돌이 됩니다. 돌은 바람이 벗입니다. 돌을 다 깨 놓으면 믿음이 그 속에서 나올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돌, 돌이 되는 흙, 그 길에는 믿음이 바람처럼 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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