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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04. 2023

기도 108-1

외딴곳

2023,02 04, 토요일



´외딴곳´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어디였을까 궁금합니다. 외딴 곳은 사방에 많습니다. 그렇지만 ´외딴곳´ 이렇게 띄지 않고 쓰는 것은 거기가 하나의 장소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단순히 한적하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먼 곳이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큰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이지 ´큰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전쟁이 났어도 큰일, 초상도 결혼도 큰일입니다. 작은일은 없습니다. 모든 작은일들은 ´작은 일´입니다. 그것은 큰일이 아닌 사소한 일이며 아무 일도 아닌 일입니다. 내가 하기 힘든 일은 큰일이 됩니다. ´큰 일´은 허공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큰일이 정말이나 엄청이란 말을 만나면 그때 비로소 ´큰 일´이 되기도 합니다. 큰 일은 큰일을 속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알맹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들 알 만한 큰 일은 ´큰일´입니다. 그래서 다들 알고 있는 듯한 거기, ´외딴곳´이 늘 가보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를 찾습니다.




제수씨가 일본 사람입니다. 집에 들를 때마다 한국어 실력이 좋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띄어쓰기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그녀 또한 무척 어렵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입니다. 일본어에는 띄어쓰기가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공부한 지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은 단락을 끊지 못해서 푸념하기도 합니다. 왜 없는 거야! 한국어는 띄어쓰기가 없으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띄어쓰기 때문에 어렵기도 합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있는 거야!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힘든 것이 무엇인가 닮았습니다. 사실 ´띄어 쓰기´도 없습니다. 이것은 또 ´띄어쓰기´가 됩니다. 의미의 분절,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띄어쓰기는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수씨는 지금 이런 것들과 씨름하는 단계에 이른 듯합니다.




´가엾은 마음´이 예수님의 동작과 동작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예수님의 쉼터, 공간, 띄어 쓴 흔적이라고 봅니다. 나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아고라*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외딴곳은 거기였습니다. 거룻배, 나귀의 등, 최후의 만찬 그리고 십자가, 모두가 외면하는 외딴곳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곳으로 예수님은 기도하러 다니십니다. 그 시절 나병 환자는 외딴곳이었습니다. 하혈하던 여자는 외딴곳이었으며, 눈이 보이지 않는 이, 죽은 나사로, 그리고 아이들,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을 열고서 거기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외딴곳을 찾아 머무셨고 외딴곳을 고치셨습니다. 나는 거기에 가고 싶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 6:34




아직 영하의 날씨입니다.


그래도 짧은 인사를 날립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 아고라 - ´모이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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