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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06. 2023

기도 109-1

그게 나를 도와

2023, 0206, 월요일



마음이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이 흐르고 공기가 흐르고 시간이 흐르는 중에 나도 흐르고 있습니다. 각각 흐르면서 함께 흘러갑니다. 무엇 하나 멈춘 것이 없습니다. 동그랗게 흐르고 있습니다. 나무는 제 안의 나이테가 맺히는 것을 알까요. 구름이 흐릅니다. 구름은 누구의 손을 잡고서 흘러가는지요. 구름의 나이테가 내 안에 나사선처럼 생겨납니다. 하늘을 보면 감겼다가 풀리는 연이 하나 날아오릅니다. 흐름을 타고 흐름이 되는 연 緣이 솔솔 날아갑니다. 그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다 고맙습니다. ´




엊그제 ´길을 걷는´ 영상을 봤습니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께서 산이며 들, 바닷가를 꼭꼭 디디며 다니셨습니다. 저 신발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걸으면서 해진 신발들을 버리지 못하고 추억에 잠기며 고마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신발도 정이 듭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기도 하고 용기도 얻습니다. 지리산 종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던 아내도 뭔가 희망을 봤던가 봅니다. 65살이었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며 반가워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참 ······. 자기보다 약하다 싶은 사람들은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이 또 우리들인 듯싶습니다. 거기를 보고 힘을 냅니다. 사람들에게 진짜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고 3에 올라가는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표를 보여줬습니다. 아마 내가 너희들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할 거다고 했더니 멋쩍게 끄덕입니다. 이때다 싶어 몰아세웠습니다. 너희는 바쁘다고 책 읽을 시간이 없지? 일기 같은 것은 아예 쓸 생각도 안 하지? 나는 그거 다 하고 살아. 저희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습니다. 그래, 무슨 말이든 해봐라. 선생님도 고3 때 그렇게 하셨어요? 묻습니다. 아니, 절대 아니지. 그래서 너희들이 나보다 희망적이라는 거야. 완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망 그 자체지! 나는 아프고 나서 이렇게 지내기 시작했어. 너희들도 알잖아, 가끔씩 기운 없어서 가물가물한 거.




시간은 참 묘하더라. 어떤 사람이 시간을 잘 쓰는지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은 바쁘지 않더라고. 그러고 나서도 할 것은 다 하고, 그렇지?




그 아이들은 지난해 여름에 저와 같이 청암산 트레킹도 같이 다녀왔습니다. 나는 산에도 다니잖아?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반쯤 웃고 반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끄덕입니다.




올해는 아직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지리산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정말, 틈으로 다니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산에 다닐 만큼 여유가 있어서 좋겠다고 그러지만 사실은 전혀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다닙니다. 지금 아니면, 오늘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여길 지나가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서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추억이 남는다고 그러는데, 길이 바로 그렇습니다. 다 걷고 돌아보면 거기 걷던 우리가 보입니다. 길하고 하나가 된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 그 풍경에 내가 들어 있다는 것이 뿌듯하게 다가옵니다. 계속하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학생들에게 그 말을 빠뜨리지 않고 전합니다.




날마다 하면 저절로 돼. 그게 나를 도와.




기도가 그렇고 운동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은 날마다 좋아지고 싶어 합니다. 무엇인가를 날마다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부작사부작 그리고 시나브로, 그렇게 가볍고 힘들이지 않아야 오래,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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