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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08. 2023

기도 111-1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2023, 0208, 수요일



머리 위로는 파란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늘은, 그 하늘을 덮고 있는 깊고도 연한 코발트블루가 높은 철조망을 내려다보고 있는 포스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천사 같은 두 소년이 마주 앉아 있습니다. 나는 거기가 수용소인 줄 알겠는데 두 소년은 그것도 모릅니다. 너희는 절대 친해질 수 없겠구나 싶은데 둘은 서로 친구라고 그럽니다. 나는 비극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파자마가 죄수복인 것을 뻔하게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를 봤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브루노의 가족은 베를린에서 폴란드로 이사를 떠납니다. 나치 장교인 아버지는 출세 가도를 한창 달리고 있습니다. 아마 영화에 나오는 철조망 안쪽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기가 맞을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기 마지막 몇 분 전에 포로들을 한 곳에 가두고 천장에서 가스를 살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영화는 곧장 끝이 납니다. 브루노의 엄마가 철조망을 붙잡고 오열하고 브루노 아빠가 독일군 군복이 비에 다 젖어가면서 아들 브루노를 외치는데도 영화는 까맣게 끝이 나고 맙니다. 조금 복잡했습니다. 아빠를 위로할 수도 브루노와 이제 막 그의 친구가 된 유대 소년 슈무엘, 두 소년의 죽음도 안타까워할 수 없었습니다. 목격했으나 증언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더듬거렸습니다. 말, 글, 생각, 마음, 내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BBC, 영화 제작을 했던 그 이름이 토요일 밤 공중을 떠다녔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렇다니까. 차라리 가만있을 것을, 쏟고 말았습니다. 쏟아진 것들은 무엇이든 주변을 어지럽힙니다.




마치 하나의 커다란 수레바퀴 같았으며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가 상상이 됐습니다. 800 페이지가 넘는 그 책을 갖고 있기만 했지 펼쳐 본 적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이 소중했습니다. 조국도 소중했습니다. 출세도 소중했습니다. 그것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습니다.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하고 같습니다. 건강도 챙겨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여행도 해야 합니다. 시험도 봐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합니다.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종교도 필요합니다.




아들이 가스실에서 죽을 줄 알았다면 그 모든 것을 과연 멈췄을까. 사람이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명령을 거부하고 출세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소박해도 우리끼리 행복하자며 용기를 냈을 것입니다. 지혜로웠을 것입니다. 지혜는 큰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발걸음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브루노는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길을 찾아냅니다. 그 길에 철조망이 있었고 그 너머에 동갑내기,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는 슈무엘이 있었습니다. 파자마는 잠에 들 때 챙겨 입는 옷입니다. 슈무엘이 전쟁 포로이기는 했던가, 죄 많은 사람이 죄 없는 사람의 죄를 그렇게 물었습니다. 벌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죄 아닌가 싶습니다. 죄가 바퀴처럼 굴러 커집니다. 멀리 갑니다. 이 굴레를 어찌할 수 없어서 흐르는 것들에 기댑니다. 별이 흐르는 밤이 보고 싶습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언덕에서 내 속에 무엇인가를 내어 걸어놓고 싶습니다. 그것이 심장이든지 마음 같은 거라도 용기 내어 그래 봤으면 싶습니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마르코 7:16




구르면서 흐르고, 흐르면서 구르는 돌, 나는 바퀴가 아니라 돌입니다.


물이 되고 싶은 돌입니다. 하늘에 올라가는 돌입니다. 비가 되어 내리는 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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