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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16. 2023

기도 117-1

딱 한 번이니까

2023, 0216, 목요일



해가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 끝이 차가웠습니다. 해풍이 불고 수평선 너머로 떠나는 초연한 연지는 못 가운데 피었던 연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뺨에 찍는 그 붉고 분홍인 감촉을 변산 바다에서 바라봤습니다. 서쪽 하늘이 신랑, 그 바다가 신부, 저녁 해는 신부가 신랑에게 보내는 그린라이트. 나는 혼인의 증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변산은 가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늘 아련합니다.




파도 소리도 연주곡 같았습니다. 그 사이에 목소리. 노래 부르는 청춘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자리를 펼치고 내가 아는 노래, 내가 모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해를 등진 그대들의 얼굴을 아예 못 봤습니다. 휴대폰을 꺼내 그대로 찍어봅니다. 나는 그대들의 정서가 흡족했습니다. 젊은 날, 노래 부른 적 없었는데 그대들은 예쁘고 풋풋하고 힘겨워도 보였습니다. 노래도 목소리도 기타 소리도 그랬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는 그 노래를 신청하지 않았는데 그 노래는 나를 잘 따라다닙니다. 살며시 웃었습니다. 바닷바람이 기분 좋았습니다. 사진을 더 찍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좋은 곳에 가서 찍고 멋진 건물을 찍고 예술적인 것을 찍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을 찾아서 찍습니다. 찍는 것이 찍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을 찍히는 것처럼 찍고, 찍는 것처럼 찍힙니다. 국가 대표 선수나 유명한 가수가 보이면 달려가 찍습니다. 사진은 없고 보여주기만 있는 사진이 널렸습니다. 사람은 없고 얼굴만 있는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볼품없는 것들은 없습니다. 삼류는 없고 나 같은 사람을 찍는 사람들도 절대 없습니다. 나도 나 없는 사진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없는 사진은 아예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찍은 것들은 믿음이 갑니다. 허물어져 가는 판자때기도 영원 같습니다. 단 한 번 존재하는 것들을 영원으로 잇는 그의 손이 따뜻합니다. 나는 그를 베를린 천사로 기억합니다.



청년들이 신음합니다. 취직을 하지 못합니다.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기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포기라는 말도 더 이상 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만 가야지, 별수 없습니다. 어디든 가봐야지, 그때 꽤나 외롭습니다. 방향을 잃으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내 서른이 그랬습니다. 다 잃었습니다. 도박판에 빠졌다가 바닥을 본 사람처럼, 술독에 빠졌다가 길거리에서 아침을 당한 사람처럼 몽롱했습니다. 사랑을 잃으면 사람이 초라해집니다.




그래서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지나가는 것들, 없는 것들, 사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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