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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28. 2023

기도 126-1

매일 떠나고 있습니다

2023, 0228, 화요일



용서할 것과 용서받을 것을 다 꺼내 놓기로 하면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우습지도 않은 질문입니다. 나는 세상에 진 빚이 많습니다. 빚으로만 치자면 벌써 파산 선고를 당했어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용서받을 것이 한가득입니다. 마당에 다 널어도 부족해서 지붕까지 올라가 펼쳐 놓아야 합니다. 한 시절 그렇게 바람과 햇볕에 말리고 나면 가벼워질까 상상합니다. 내 우울의 씨앗은 용서받지 못한 것들이 낳은 기억입니다. 길을 떠나는 이유입니다. 매일 떠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미사를 보는 내내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성당 안이 불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도 성당이 눈에 띄면 거기 들어가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 기도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성체*를 아마 십 년 정도 받아 모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의 애도였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싶었습니다. 할 수 있다면 남은 날을 다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소리 들었습니다. 쓴소리였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수녀님께서 유심히 살피셨던가 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스며들지 않고 망부석처럼 그대로 내 앞에 서 있습니다.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다고´


애정이 묻어 있으나 지나치게 가벼웠고, 가벼웠으나 가시가 돋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고 하면, 정신이 들었다고 하면 좋은 일인가·····. 미안하지만 그런 말은 익숙했습니다. 어른들도 그랬고 선생님들도 그랬으며 친구들도 그런 말투였습니다. 온화하다는 말을 어디에서 처음 배웠는지, 아····, 그것도 수녀님이었습니다. 엠마 수녀님이 그러셨습니다. 왜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지 가끔 삶이 한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건 고집입니다. 나는 빌지 못했습니다. 용서를 빌 줄 알고 소원을 빌 줄 알아야 하는데 맹랑하게 매를 청했습니다. 나는 잘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잘 듣습니다. ´얼마나 죄를 지었길래´




아내와 청암 호수를 거닐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두 사람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악착같이 살아내는 일, 거기 어디에 애정을 주고 달래면서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있었겠는가. 숲이 그렇듯이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던가. 내가 불쌍했다면 우리 부모는 더 불쌍한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런 것이 희망이겠지.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그때까지는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서로를 안타까워하기 시작했으니 이 또한 좋은 일 아닐지. 나는 삶을 무던히도 열심히 살아냈던 내 아버지, 내 어머니에게 무엇으로 위로할까.



¶ 당신은 이 생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습니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나의 수행은 내가 쓸모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줍니다. 만일 내가 짧은 순간이나마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 깊은 정신적 만족감을 안겨 줍니다. 이 느낌은 당신이 타인을 위해 봉사할 때면 언제나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나는 행복을 느낍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비,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입니다." - 달라이 라마, 빅터 챈 - 용서 274p.




예수님의 기도와 하느님의 용서, 달라이 라마의 행복과 나의 참회는 색색의 모래로 그린 만다라 같습니다. 사람들마다 그리는 만다라, 그것이 다 흘러갈 것입니다. 나는 모래알보다 작은 모래알보다 작은 모래알, 그 모래알이 품었던 꿈. 꿈들끼리는 투정하지 않기로 합니다. 용서도 아예 모르는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래가 모래를 왜 힘들어하겠습니까. 그저 그림입니다.


* 성체 ㅡ 예수님의 몸. 축성된 빵의 형상을 띠고 실체적으로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일컫는다. 미사 때 성체를 받아 모시는 행위를 영성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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