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처럼 Mar 01. 2023

기도 127-1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 줄

2023, 0301, 수요일



그럴 수 없으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은 일상이 신앙 같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것을 그렇게 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상황은 정반대로 흐를 것입니다. 위험하고 불안해서 매일이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흥미롭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쪽과 저쪽을 왕래합니다. 어떤 찰나에는 부리나케 여기를 찍고 저기로 달려갑니다. 가끔 그런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얼마나 화면 같을까.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너그러워서 미움도 사랑도 경계가 없을 테니까 내가 그대로 잘 보일 것 같습니다. 그저 보일 뿐, 아무런 소회가 없을 듯합니다. 내가 땅을 구르는 개미를 보면 그렇습니다. 사느라 사는 개미들이 부지런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희끼리 무슨 일이 있든 나는 무심합니다. 집을 짓고 살든 알을 낳고 살든 내가 사는 허공을 개미들은 감각하지 못합니다. 허공도 되지 못하는 이 높이를 개미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개미에게는 없는 세상에 내 머리가 있습니다.




알리바이 하나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뭐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우리는 제대로 대답하고 싶어 합니다. 누가 내 증인이 되어줄 것이며 무엇이 나를 증거 할 것인가. 혼자 산길을 가면서 물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나를 지키고 있는가.




꼬마 아이들에게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는 것과 하느님이 계신다고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어른들을 보면 그의 아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미안한 일이지만 꽃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말을 더 나눌 수 없게 됩니다. 무엇을 믿는다는 말은 그렇게 미신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나는 어떤 사람은 굳게 믿습니다. 내가 나를 믿는 것보다 더 그를 믿습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는 있습니다.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믿을 게 없습니다.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자기를 믿습니까. 그것을 어리다고 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때 믿는 사람들, 믿어야 할 때 믿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주도에는 내가 믿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믿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나는 그의 가난을 믿고 그의 슬픔을 믿고 그의 외로움을 믿습니다. 늘 그가 보고 싶습니다.




¶ 형,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 줄 아세요?


어렸을 때 외갓집이 무주 구천동이었어요. 거기 할머니 집에 우리 형하고 저하고 맡겨 놓고 간 거예요. 엄마랑 아빠는 가난하니까. 서울에서 돈 벌어야 해서요. 형이 말을 못 했어요. 서울 살 때는 우리 형이 애들한테 놀림을 많이 당했거든요. 그것도 보기 싫고 그러니까 외갓집에 간 거예요. 나 보고 형을 지키라고 했는데 우리 형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살려달라고 말을 못 하니까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이십 년 전 소주를 마시다가 맥락 없이 그가 꺼낸 이야기는 나를 살렸습니다.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더 애처로워지지 말자, 싶었습니다.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슬픔이 다른 슬픔으로 위로되었습니다. 감기가 옮겨야 낫는다고 믿는 유치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술값을 냈습니다. 그의 슬픔을 사서 나누어 갖고 싶었습니다. 내 슬픔을 덮어주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늘 농담처럼 말합니다. 다음에는 꼭 목사님 되라고.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다음 생에서나 할 수 있는 거룩한 일입니다. 거룩한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그 마음을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참 예쁘게 외롭게 살아갑니다.




하늘이 흐리다고 그랬는데 오늘 아침 편지를 띄우고 지리산에 갑니다. 겨울 방학이 끝났으니까 제가 쉴 차례입니다. 2달 만에 하루를 얻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바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바빴습니다. 눈망울이 총총한 아이들은 사람을 붙잡습니다. 아이들 속에서 그저 시간이 없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영어를 가르치느라 그랬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더 떠들었던 거 같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내내 걸어볼 생각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기도 126-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