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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r 02. 2023

기도 128-1

행복을 빕니다

2023, 0302, 목요일


길은 그 길인데 참나무 잎이 수북했습니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근 십 년 사이에 가장 적게 변한 곳을 찾으라면 둘레길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백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멀리서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때 나는 저 바위에 앉아 물을 바라봤었는데.



길에서 기도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올 줄 몰랐습니다. 빛이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따라다니겠습니다. 하느님,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식구들 넷이서 산길을 돌아 덕산 마을로 내려오면서 오늘 하루,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많이 고마웠습니다. 자꾸 고마운 것이 솟으니까 바람마저 거룩했습니다. 개들이 짖는 것도 대나무 잎이 흔들리는 것도 늙은 감나무들이 길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모두 반가웠습니다. 살아서 좋구나 싶었습니다.




2020년 5월 1일,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 그동안 자랐습니다. 어제를 경계로 아이들이 더 씩씩해질 것 같습니다. 아내와 나는 반 보 정도 걸음이 느려질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디쯤에서 서로의 위치가 바뀔 것입니다. 그때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즐거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싶습니다. 어서 기도를 마치고 어제 이야기를 적고 싶습니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부탁과 격려를 보냅니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쉽지 않더라도 부디 생기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내 손은 차갑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손으로 길을 가리키겠습니다.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대들의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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