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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Mar 02. 2023

지리산 둘레길 8코스

길에서 나누는.


운리 마을 주차장에는 늦가을 정취가 물씬했었다. 하루를 다 걷고 거기에서 바라본 풍경은 전생에 내가 떠나온 고향같이 나른한 구석이 엿보였다. 아마 감나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감나무에는 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새들도 없는 하늘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아무 집에나 들러 이른 저녁을 먹을 수 있겠냐고 물으면 놀라면서도 자리 하나는 내줄 것만 같은 날. 2022년 11월 19일. 다시 성심원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택시를 기다리면서 다음 언제, 여기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지리산 둘레길 여덟 번째 길은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러니까 백 일이 됐다. 백 일은 겨울이었다. 큰 눈이 한 번 내렸고 줄곧 영하의 기온 속에서 지냈다. 설 연휴 가운데 하루를 꼬불쳐 달려올까도 싶었는데 그날은 하필 최고로 추웠다. 밖에 나가지 말라고 TV에서도 말렸다. 괜히 마음에 걸렸다. 감나무들이 왜 얼지 않았을까, 나 같으면 몇 번은 죽어났을 것이다. 백 일이 지나서 만나기로 할 것을, 그랬다면 전래동화 같았을 것이다. 오누이가 손잡고 호랑이가 고갯마루를 지키는 이야기, 넘실대는 파도가 산을 만나는 여정은 또 어떨까. 길에서 길을 주었던 사람들이 연기처럼 하늘로 피어나는 하루를 나는 따라간다. 우리는 3월 1일에 그 앞에 섰다.

책가방도 마련했고 교복도 기다리기만 하면 되고 겉은 다 준비가 됐으니까, 출발선에 서기 위해서 여기부터 걷자. 우리는 출발하러 간다. 감나무가 잘 있었다. 길이 열렸다. 이정표마다 표정이 밝다. 너희도 바빠지고 싶구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구나. 길을 알려주고 싶은 거로구나. 덕산까지 14km는 내내 가벼웠다. 겨울이 살 찌운 것은 영혼 아니었을까. 봄에는 밖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새봄이다. 오리나무 가지에 작년과 올해가 함께 매달려 있다. 매화나무는 꽃만큼 근사하지 못하다. 농부의 딸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나는 매화 가지에서 가져다 쓴다. 덕산으로 가는 길은 오붓하고 굽이 지고 달착지근하다. 애호박을 썰어 넣은 된장찌개를 이 길 어디에서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도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즐거운 것이다. 잘하면 춤추면서 걷겠다.

산청 가까이 왔던가, 차들이 빨라질 즈음에 여기 구간 단속 있지 않았던가, 혼잣말을 꺼냈다. 1분이 지났을까, 내비게이션 안내 방송이 떠든다. 시속 백 킬로 구간 단속 구간입니다. 나는 감 感이 좋다. 물론 그 감도 좋아한다. 홍시, 말갛게 빛이 비치는 부드러운 감촉을 무엇이 당해낼까. 어깨에 긴장이 잠시 내린다. 구간 단속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옆에 탄 아내가 정리한다. 나도 동감이다. 그리고 덧붙여 빌었다. 삶에서도 구간 단속이 있어야겠다고. 사고가 많은 곳에서는 그렇게 달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급히 무전을 쳤다. 누군가 내가 보내는 타전 소리를 잡았다면* 그것으로 안심이다. 고속도로에서 시를 쓰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구간 단속 덕분이다. 산이와 강이는 달리는 도로에서 곡예처럼 잔다. 고개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자는 저 아이들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은 무엇을 건네줄까. 신선한 여행이다.

8코스를 다 걷고 나면 돌아가서 글을 쓰겠지. 지리산 둘레길을 2020년 5월 1일에 걷기 시작했다. 내가 바쁜 탓에, 아니면 가난한 탓에 1년에 고작 두 번, 아니면 세 번을 온다. 겨우 그것을 오면서 감격해한다. 그러니 살 만한 세상이다. 겨우의 겨우를 맛보고 실천한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 걷고서 여기 지리산을 111km. 온점을 탁 찍는다. 부안 마실길을 다 걷고 얼마나 시원했던가. 부안, 격포, 곰소, 줄포를 잇는 해안선을 만끽하던 날들을 기억한다. 과연 지리산 둘레길 스물한 개 코스를 우리가 다 가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묻지 않고 답하는 말을 배우고 있다. 그런 언어를 하나쯤 갖기로 하자. 맛보는 일을 혀에게만 맡기지 말고 우리의 감각을 끌어모으자. 맛을 내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진짜를 맛보자. 하나밖에 없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그것을 떠먹자. 그래야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 좋았다고 대답하겠지.

누가 그 돌들을 다 쌓았을까. 옛 선비가 오가던 길에 나무꾼도 사냥꾼도 피난 가던 사람들도 거기를 지나서 어디로 갔을까. 나는 더 나은 흔적을 거기 남겼을까. 거기 흐르던 물은 마르지 않고 흘렀으면 한다. 누군가는 그 물로 제 흔적을 씻어주고 싶을 테니까. 성수 聖水는 보호막이 아니라 흐느낌이다. 기적의 물이 아니라 눈물이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함께 띄우는 물, 우리는 날마다 거기에 몸을 적시고 영혼을 숨 쉬게 한다. 물처럼 쌓인 돌들도 예쁘다. 가지런하다. 길을 돋보이게 한다. 서로가 넉넉하다. 그 길에는 참나무 이파리가 가득했다.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발밑에서 요란하다. 내 영혼이 박자를 맞춘다. 나는 걷고 낙엽과 낙엽 밟는 소리와 내 영혼이 라데츠키 행진곡 Radetzky Marsch*을 연주한다. 박수소리 당당하다. 참나무 군락지를 버젓이 들어섰다가 나이를 잃었다. 나는 오백 살이라고 해명한다. 자꾸 음풍 吟風이다. 맑은 바람이 인다. 내 안에서 분다. 그렇다면 밤을 기다려 달을 노래할까.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다. 내려가자, 솔솔솔 내려가자.

내일이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오늘은 마냥 신났다. 자식은 부모가 걸음 소리를 듣고 자라며 부모는 자식 웃음소리로 세월을 이겨낸다. 오늘 하루 많이 웃었다. 너희는 학교에 잘 다닐 것 같구나. 잘 걸어줘서 고맙고 더 큰 것이 고맙고 사이좋게 지내줘서 또 고맙다.

길이 끝나는 곳에 새 건물이 하나 보였다. 성모상은 어디에서 보든 가까이 가서 경배하고 싶다. 동방 박사 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덕산 공소가* 좋은 곳에 있었다. 9코스는 이쯤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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