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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27. 2023

기도 125-1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2023, 0227, 월요일



크리스트 신앙인에게 봄은 사순절입니다. 좋은 짝인 듯합니다. 사순절에는 고개를 숙이고 내 안의 빛을 거둬 잠시 침묵합니다. 밖은 봄, 날마다 환하게 피어나는 것들이 결국 만발할 것입니다. 꽃밭이 교회가 되는 날들입니다. 교회가 꽃밭이어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희만이 기쁨은 아닐 것입니다. 다 타고 남은 재는 영광 아니었습니까. 그 재를 꽃밭에 심어둡니다. 사순은 거름이 되는 재가 꽃들과 친해지는 시간입니다. 자양분이 됩니다. 그것이 물기를 머금고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잎으로 오를 것입니다. 사순은 재와 꽃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십자가를 준비합니다. 망치질해서 못을 박아 높게 세우는 십자가가 아니라 걸어 다니는 십자가, 숨 쉬고 심장이 다 느껴지는 십자가, 주름이 흘러내리고 춤추고 노래하는 십자가가 탄생합니다. 봄을 잘 지내는 일이 열매를 맺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사순절에 잘 자라면 신앙이 열매 맺습니다.




아하,




저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좋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겨울밤에 책 읽는 소리만큼 세상에 듣기 좋은 소리가 없다던 옛 선비의 말에 대구 對句를 적어 넣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이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영글 때, 가르치는 사람은 흥이 돋습니다. 그랬냐? 그랬구나! 그렇지. 나도 여음을 탑니다. 마치 판소리 한 마당을 끝낸 듯합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얼굴과 그 얼굴을 배웅하는 얼굴 양쪽이 모두 달아올랐습니다.




예수님은 많이 일러주셨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만 가졌지, 그 밖에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들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자랐습니다. 마음이 자라면 그 마음에 견줄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보고 싶어 하면 지구를 다 돌아서라도 찾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켜보시며 가꾸시고 가르치고 돌보셨습니다. 봄이면서 사순인 계절에는 그 마음을 마련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마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노래하는 하늘이 넓습니다.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문득 당신께 편지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인사로 시작하고 싶은 날들이 사순입니다. 그 편지 마지막은 이렇게 맺습니다.




¶ 그만 접습니다. 처음 쓰고자 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소리도 너무 요란하고 더군다나 금방 읽기에는 길고 지루한 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기 바랍니다.




편지를 썼던, 그 봄이 아련하다고 혼잣말을 해봅니다. 윤대녕의 소설,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에 나오는 문장들에서 나는 사순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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