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 오세영

시의,

by 강물처럼


원시 /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하늘에 대고 인사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잘 지내고 있겠지

묻는 말인지 부탁인지 분명하지도 않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가,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선 끝을 나도 알 수 없는 때는 그럴 때는

가뭇한 기억 속에 떠나버린 사람이겠거니.

누구를 묻지 않고 그 사람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했을까?

세월은 지나가기만 하는데 나이는 왜 먹었을까.

말도 안 나오고, 목구멍만 흔들리는 가을에는

자꾸 인사를 해댄다.

끄덕이며 끄덕이며 잘 있으라고만 한다.

잇몸이 부어 씹지도 못하고 삼키는 밥알처럼

몽글게 몽글게 넘어가 주기만을 인사한다.

멀리 있어서 자주 찾아오는 그 사람들이 훤하게 뵈는 하늘이다.

나야말로 끝내주는 원시遠視을 갖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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