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쉽게 피곤해지는 몸이라 다른 식구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든다.
그런 나를 배려하는 움직임들이 바닥을 타고 누워있는 내 허리와 어깨로 전해진다.
그때쯤이면 나는 실컷 지긋하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생각으로 머무려 진다.
더 놀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오늘 하루 지내오면서 생겨났던 피로감이 하나씩 발을 뻗는다.
나는 그들의 받침이 되어주고 싶다.
댓돌이라도 될 테니 내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쉬어라, 피로한 것들아.
흐릿하거나 희미한 것은 동색 同色일 것이다.
기분 좋게 아늑해지는 화음으로 간지럽힐 줄 안다면 거기에서 빠져나올 위인은 정녕 없을 것이다.
잠 께서 오신다.
"여보, 강이가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정적을 깨고, 마치 레테의 강가에 쌓였던 안개가 일순간에 걷히는 듯 분명하고 또렷한 소리가 나를 부른다.
그 소리는 하루치 피로는 싹 털어버리고 이제 피기 시작한 가을 국화처럼 생생한 노란색을 풍겨온다.
눈이 자연스레 떠졌다.
"강이가, 하도 재미있는 말을 해서 내가 가만있을 수가 없네."
나도 궁금해졌다.
아니, 오늘을 다 보내기 전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아서 들어보고 싶었다.
"엄마는 트림을 하면 고기 냄새가 나. 근데 유통기한이 살짝, 아주 살짝 지난 거 같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밤새 어딘가에 가서 닿았을 것이다.
나룻배를 타고 다녔다면 좋았을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빠는 학교에 등교를 했고, 강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금요일 하루만 등교한다.
점심을 강이하고 나, 둘이서 먹는다.
엄마가 아빠 생각하느라 청국장을 끓여놓았다.
아침에 먹은 반찬 그대로 점심을 먹어야 하는 초등 5학년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줬다.
들기름으로 정성스럽게 sunny side up을 실현시켰다.
강이는 함부로 밥을 먹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에는 가장 재미있는 것을 꺼내온다.
가장 흥미로운 영화나 가장 친한 친구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때로는 나도 내 주제에 빠져 강이의 소중한 것들을 대충 듣고 마는 경우도 많다.
유난히 조용한 분위기여서 일부러 아이를 부른다.
"강이 씨, 맛있는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곧 갈게요, 그러면서 손을 씻고 자리에 앉는 얼굴이 동그랗다.
"아빠, 아침에 책꽂이를 쭉 봤는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어."
아직 첫술도 뜨지 않았는데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유난히 동그랗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 나는 시선을 잃고 그 속에 빠진다.
"책에는 제목이 있는데 그 제목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더라고."
오, 이거 또 뭔가 준비하고 들어야 하는 대목 같았다.
나도 거슴츠레한 눈을 힘껏 맑게 빛내보였다.
-어때, 이만하면 내 눈도 그런대로 먹어주지? - 이건 어디까지나 내 속에서 번지고 사라진 말이다.
무슨 공통점이겠냐며 묻는다.
아빠는 책 쓰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에게 아직 한 권도 아빠 책을 보여준 적 없는 것이 그 짧은 순간 서러움 비슷하게 코끝을 스쳤다.
Remedios의 음악이라도 흐르면 감정을 잡고 긴 호흡으로 연기할 만한 장면 같았다.
"책 제목에는 '목적'이 있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책꽂이에서 책 3권을 꺼내 보인다.
그래, 알고 있었지만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끄덕이며 그럼 나는 '목적'이 아닌 제목을 골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충분히 될 것 같았다.
나도 딸아이에게 하나를 건네줄까 싶어 물었다.
"그럼, 여기 테이블 위에 있는 이 반찬들의 '목적'은 뭐지?"
11살짜리는 반가워하며 얼마간 당황한 빛도 잊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서 있는 거라고 마땅한 말이 그 작은 입에서 새어 나왔다.
저도 그 말이 어쩐지 싱거웠던지 예를 들어준다.
몸이 좋지 않아서 완전 180도 누워있는데 이 반찬을 먹고 조금이라도 좋아져서 그러니까 45도라도 일어나게 되면 좋지 않냐며 내 이해를 부추겼다.
요것 봐라, 숫자를 동원하면 객관성이 높아 보이는 것을, 어쭈구리구리.
수학을 어려워하는 강이에게 저 정도 나오면 진심 숙고한 흔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말이나 글은 또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기가 수긍되지 않으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바꾸고 또 고치고 다시 퇴고하고 그러고도 후회하는 작업 아닌가.
"그것은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고 반찬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위해야 하는데?"
"순전히 다른 것을 위해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꼬마 아이의 입을 막아버린 셈이다.
어쩌면 바위 같은 내 말이 푼푼하게 부푼 하트로 가는 바람길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로 불던 바람이 소용돌이친다.
강이가 그런다.
작심을 하고 나선다.
"아빠,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해.
그런데 엄마가 나를 위해서 위로를 해주고 내가 좋아졌어."
차근차근하게 말할 때, 그때 햇살이 든다.
정리가 스스로 되었다는 신호다.
"그때 엄마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그것은 무엇일까.
조용히 지긋하고 높게 눈을 감았다.
다시 잠에 들고 싶어 지는 피로감이 기분 좋게 흐른다.
목적이 그렇게 풀어지다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태 살았구나.
그러니까 헤매고 살았던 것이구나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둘로 풀어가는 삶이 그런 뜻이었다니.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마땅할지 어렴풋하게 희미하게 그리고 흐릿하게 건너오는 손님을 맞았다.
점심상에 그를 모시고 함께 밥을 먹었다.
오붓하니 맑은 가을 하늘에서 바람이 솔솔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