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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24. 2023

갑사 가는 길

여행 또는 일기


 지리산에 가려고 맘먹고 있었다. 5월 그 황금 같은 공휴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던 '두문동 사건'이 생각난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옴짝 달짝 못하는 신세는 불쌍하다. 그래서 지리산에 가려고 했었다. 두 가지 이유로 그 계획을 접었다. 우선 우리가 이번에 걸어야 할 코스는 둘레길 9코스, 집에서 9코스 출발점까지 차로 3시간 걸리는 거리, 왕복 6시간이 필요하다. 8코스도 똑같은 상황이었고 앞으로 10코스, 11코스 계속 이런 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둘레길을 다 돌겠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한 코스를 마칠 때마다 우리 가족은 실감하고 있다. 문제는 6일 하루 만에 다녀오는 것은 괜찮은데 다음날 산이랑 강이가 학교 가는 데 힘들어할 것이 눈에 선했다. 하루를 걸으면 하루를 쉬어야 한다. 학교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쉴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중간시험에 성적이 좋지 못했던 관계로 조금 더 열심히 기말시험을 준비해야 할 처지다. 물론 내가 주의를 주는 부분도 있지만 산이와 강이 저희들도 나름대로 납득이 되지 않는 눈치다. 마침 날씨가 화창하지만 6월인 만큼 덥다. 9코스는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지는 코스라서 그늘이 거의 없다. 사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도보 여행이 아니라서 그 먼 거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기분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양보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찾아간 곳이 계룡산, 갑사였다. 이왕 가는 거, 동행이 한 사람쯤 더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애들 엄마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렀다. '갑사 가는 길'을 꺼내면서 옛날에 한 번 가보고 못 가봤다며 반가워하는 얼굴이 나도 반가웠다. 우리는 저번에도 고창 선운사를 지나서 물이 있는 데까지 같이 걸었었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좋아진다.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밥을 한 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여유를 바라는 소박함이 차 안에서 동동거렸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누리고 싶은 정서가 이런 것 아닐까.

그렇게 산에 다녔어도 갑사는 처음이다. 의외로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지적을 받을 때가 있다. 스승이 없이 자란 것들은 모양새가 그럴듯해도 속이 엉성하기가 십상이다. 내가 그렇다. 나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무엇이 순서인지 알지 못하고 나이를 먹었다. 그래서 삐뚤빼뚤하지만, 성기고 투박하지만 오래, 무엇이든 오래 시간을 들인다. 그래서 효율성도 합리적인 것도 부족한 것을 안다. 그러나 내 걸음에 불평이 적다. 그리고 무엇이 하나 내게 쥐어지면 그게 크게 보인다. 여기부터 알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에 얼른 기분이 좋아진다. 스승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가끔 오뚝하게 조각된다. 순서는 없어도 질서는 있어서 평화가 무엇인지 모른 채 바위 같기도 나무 같기도 구름 같다가 바람을 탄다. 물처럼 흐른다. 갑사로 오르는 길은 꾀꼬리가 울어서 더 좋았다. 여름만 되면 그날만 되면 탈피를 하고 날개를 달려고 한다. 그렇게 걸어서 산길을 올랐다. 어디에서 신발을 벗었던가. 맨발이 되는 지점이 나를 벗고 삶을 흉내 내는 시작점이다. 나라는 삶을 살지 못하고 사는 나를 발바닥이 먼저 꺼내놓는다. 돌계단에 닿는 무심하고 달달한 감촉, 빨간 피가 동동 파란 혈관을 두드린다. 북이 둥둥 울린다. 심장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든든해진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나오는 지니처럼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며 언제든 불러 달라고 거드름을 피운다. 저를 믿으라고, 저만 믿으라고.

사실 아침에 부고를 받았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계룡산 갑사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온 것이다. 친구의 장인이 돌아가셨다. 병환이 갑작스러웠고 동시에 깊었다는 이야기를 밤늦은 조문에서 들을 수 있었다. 반년이 다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지내나 걱정스러울 정도였는데 또 한 번 마음이 의지하던 사람을 잃었구나. 마음을 돌보는 일에 부부가 서로 깊이 뿌리내려야 할 지점에 도달한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할까, 갑사에서 이름이 예쁜 금잔디 고개에 오르면서 생각했다. 금잔디가 피어 있으면 끝내주겠구나.

20년 더 지난날에 무등산 줄기에 있는 어떤 계곡을 자주 찾았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에서 봤던 동그란 무덤, 클로버가 무성하고 꽃이 색색으로 자랐다. 가느다란 팔목에 시계며 반지가 되어주던 살가운 것이 거기 가득했다. 분홍색이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그것이 무덤이어서 그랬었던가. 늦은 봄볕이 걸음을 멈추고 나와 무덤 사이에서 살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도 기도합니다. 거기에서도 따뜻하세요.

우리는 모두 오십이 더 넘은 사람들이라 거기까지만 구경하고 내려가기로 한다. 다시 돌계단, 하나하나. 그대는 하나하나 무엇인가를 세어 보거나 걸어 보거나 움직여 본 적 있는가. 시간은 늘 그렇게 우리를 세어주고 우리를 기억한다. 그러니 모두 내 탓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이다. 어린애들처럼 놀이를 하며 하나하나 산을 내려왔다. 친구라서 좋은 것들을 휴대폰이 울리기 전까지 서로 꺼내가면서 자기가 아는 '친구'를 소개했다. 그런 놀이는 신선하고 유쾌해서 사람을 착하게 한다. 그 덕분에 물빛이며 나뭇잎을 통과하려고 몸부림치는 초록빛을 더 잘 간직할 것이다. 오래 걸어도 좋다고 다들 공감했을 것이다. 걸음이 절간 같았으며 그 걸음 사이와 사이는 교회의 종탑 같았다. 열 걸음이 완성되면 돌부처가 하나 만들어졌고 백 걸음이 채워지면 공자님도 우리 손을 잡고 끄덕였다. 삶이 황홀하다는 말을 어딘가에 표지로 세워둬도 좋을 것 같은 날이었다. 가을에 또 오자니, 나이 든 여자 둘이 킥킥, 벌써 천 걸음도 더 왔는데도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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