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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25. 2023

청암 호수

여행 또는 일기



 어제가 6월 24일 토요일, 6월 3일 토요일은 3주 전이다. 그날 아침이 기억난다. 청암산으로 둘러싸인 군산 호수에 갔었다. 옥산 호수라고도 불리는 곳은 두 시간 정도 트레킹 하기에 좋은 곳이다. 호수를 빙 둘러서 걷는 길이기에 중간쯤에서 따로 빠져나올 방법은 없다. 간 길로 되돌아 나오거나 길이 난 대로 계속 걸어서 입구에 다다르는 방법뿐이다. 처음에 여기를 오는 사람들 중에 얼마 못 가서 지치는 사람들은 난감해하기도 한다. 지름길을 찾지만 그런 길은 없다. 들어서면 끝까지 걸어야 하는, 말하자면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같은 메시지를 건네는 풍경이다. 물론 여기는 지옥 입구가 아니라 오히려 천국 같은 곳이다. 꽃길도 있고 오솔길도 있으며 데크로 만들어 놓은 편안한 길도 있다. 무엇보다 걷는 내내 호수를 볼 수 있어서 마음이 흥겹다. 솔직히 가끔 그 생각을 한다. 한 번 뛰어들어 봐. 하지만 이제 내 수영 실력을 믿지 않는다. 벌써 7년이 넘는다. 수술한 몸이 회복되어 가는 것을 눈치채고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수영복이었는데 그거 어디에 뒀는지도 모른다. 기운은 돌아왔지만 대신 몸이 차가워졌다.

 몇 해 전인가, 강원도 영월도 떠났던 여름휴가 때 우리 가족 넷은 그 유명한 동강에서 래프팅을 했었다. 그 해는 비가 오지 않아서 강물도 천천히 흘렀다. 강원도 계곡을 흐르는 물이었지만 차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거기 넓고 평평한 지대에 석간수가 나오는 곳이 있었다. 미리 알려주지 않고 고무 튜브가 거기 멈췄을 때 그때 알았다. 내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아무리 물이 차다고 해도 그렇게 한순간도 견디지 못할 줄이야. 발목을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것 같아서 폴짝폴짝 뛰다가 겨우 발 디딜 만한 돌 위에 몸을 의지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거기 눕고 물장난을 치고 웃고 있는데 나는 그 물속에 더 발을 담글 수가 없었다.

가끔 청산도를 떠올린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던 작은 섬. 바다와 하늘이 높고 푸르러 아무 말도 없이 오후를 다 보내던 날이 있었다. 철이 지났어도 한참 다 지난 늦가을, 10월 달 31일. 고요한 세상에 물결이라도 그려 보고 싶었다. 텅 빈 방에 드는 흰빛으로 난을 치는 이가 그러했을까. 나는 붓이 되고 싶었던가 보다. 먹이었으면 어땠을까. 깊은 먹빛과 먹내음으로 바다에 든, 하늘이 보는 나였으면 어땠을까. 자유롭던 날이었다. 깊이가 두렵지 않고 물살에 허우적대지 않아도 나는 멀리 갈 수 있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멀어지는 날들을 바다에서 바라보았다. 나는 금방 나이를 먹을 줄 알았다. 98년 내가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헤엄을 쳤던 시절, 늘 그 바다를 생각했었다. 거리를 거닐면서 공중전화를 걸면서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서 술을 마실 때도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도 물이 그리웠다. 겁 없이 거기 딛고 싶었다. 물속을 거닐고 싶었다. 한 번만 더. 꼭.

호수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끈다. 매혹적이다. 달을 따러 그 속에 들어갈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삶이 풀처럼 단정하기를 바란다. 풀이 마른다. 풀이 마르면 계절이 다 가고 떨어졌던 것은 하나가 된다. 소리도 두꺼워지고 삶도 굳어진다. 바다였던 것들과 하늘이었던 것, 그리고 나였던 것들이 하나였던, 그날 꾼 꿈을 무엇이었을까. 나는 잘 지내고 있다.

3주 전 일기를 쓰는 일은 이렇듯 몽환적이다. 다가올 삶과 지나간 삶 중에 어느 것이 더 내 것과 닮았는지 나는 조금 골똘해진다. 지금은 여름을 앞두고 있는 여름, 그때를 멀리 두고 있는 지금은 벌써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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