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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29. 2023

건강검진

편지 또는 일기



 아침 7시까지 대장 내시경을 위한 하제액과 물을 다 마셨다. 밤중에 몇 번을 깨어 화장실에 다니는 통에 정작 5시에는 잠을 깨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는 6시 10분 전, 부랴부랴 남은 한 세트를 물에 타서 마셨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혼자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를 터미널에 내려주고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고 출근을 해야 했다. 수면내시경이 다 끝날 즈음에 건강검진협회 앞에서 보기로 했다. 아침 시간에 익산에서 전주 가는 직행버스를 처음 타 봤다. 숨길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만경강이 보이는 하늘 아래로 같이 달렸다. 버스를 따라오는 것들이 다 출렁거렸다. 비가 온 다음 날이어서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도 선명했고 그 구름 아래에서 저희끼리 상고머리를 쓰다듬으며 까르르 거리는 어린 모들. 모내기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논들이 정갈했다. 거기를 지나가는 소녀 무리가 있다면 찰랑찰랑 길게 땋은 머리가 보기 좋겠다. 이 길을 오고 가면서 무슨 꿈을 그렸을까.

그만 생각이 가는 곳에서 나를 멈추고 눈을 감는다. 앞으로도 내시경은 자주 하게 될 처지인데 올해는 좀 지쳤다. 유난히 더 힘든 편이다. 모처럼 타보는 버스가 반가운데도 우선 내 몸이 어지러우니까 눈부터 감게 된다. 내리는 곳이 혹시 바뀌지는 않았을까, 덕진에서 내립니다, 그 말을 인사처럼 건네고 운전석 뒷자리에 앉았다. 예전에도 운전수 아저씨는 아저씨였는데 지금도 운전하시는 분이 아저씨처럼 보였다. 나는 어떻게 보일까.

가거라, 아이야. 그러면 보게 될 거야.

가라, 가거라, 아이야 그러면 알게 될 거야.

어디에 나왔던 노랫말이었을까. 그 말을 갖고서 스무 살의 나를 찾아가 어떻게 건네주면 좋을까. 어젯밤은 꿈도 꿨다. 거의 하루를 굶다시피 해서 그랬는지 그래서 기력이란 것이 순간 긴장을 놓쳤었는지 무서운 꿈이었다. 웅크리고 머리맡에 앉아 있는 그것의 실체를 목격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소리를 쳤지만, 소리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은 것이 가위눌린다는 것이다. 다른 데에서 자던 아내가 그 소리에 깰 정도였으니까, 나를 흔들어 깨울 정도였으니까. 나는 좀 혼이 난 셈이다. 실감이 나는 일들, 실감이 나지 않는 일들, 그 두 세계를 오가는 일이 앞으로 내게 남았을 것이다. 슬픔은 어떻게 처리할까. 기억은 어떻게 다스리고, 음악이나 책들은 덤덤하게 담아낼 수 있겠지. 그리고 먹고 자는 일은 또 어떤 식이면 좋을까. 건강이란 말도 노스탤지어인 것을.

플립이라고 하면 귀엽게 들리고 용종이라고 그러면 심란한 구석이 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것들은 일종의 표시이거나 신호, 어렵게 이야기하면 표상 같은 것일 뿐, 내가 느끼는 것들에는 현실이 결여된 느낌이라고 말하고 나면.... 트럼펫 소리가 듣고 싶어 진다. 해 질 무렵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하루를 다 산 보람이나 시간, 대가 같은 것들을 위로하며 하늘로 데려가는 모습이다. 사람만 남아서 다른 내일을 맞이하게 되는 어떤 마지막 장면, 이번에는 용종을 4개 제거했다고 친절하게 이야기해 줬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이런 식으로 나는 다른 2년을 맞이하였다.

일단 일이 끝난다는 것은 정신이 맑아진다는 뜻, 종전의 키스*, 나는 그 사진을 잊지 못한다. 삶이 전쟁에서 돌아왔다는 표시를 그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사가 있을까. 병이 깊은 환자에게 그 사진을 프린트해서 서류 봉투에 넣어 보냈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그에게서 온 짧은 메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다시 살고 싶네요.'

용종을 제거했으니까 오늘 하고 내일은 죽을 드세요. 나는 웃으면서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저는 죽을 좋아합니다. 나를 상담해 주던 분은 어제 하루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지난 1주일은, 지난 한 달 동안은, 1년은.

도로에 나와 차들을 구경했다. 저쪽에서 우회전으로 들어오는 차들, 그 가운데 아내가 있다. 그래 다시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야겠구나. 1차선에서 길가로 들어서지 못한 아내가 한 번 유턴을 해서 돌아와야 한다. 조그만 차이들, 보이면 그 맛에 살아가는 것 같고 보이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폭폭 하기도 한 것들, 건강검진만 받았는데 왜 나는 어제보다 순해졌을까. 다시 도로를 건너면서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을 알겠다. 나는 그대를 돕고 그대는 나를 돕는다.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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