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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03. 2023

산이는 한가롭고 강이는 바쁘다

지금 쓰는 육아일기


 7월이 되었다. 하루는 비가 쏟아지고 그다음 날은 햇볕이 내리쬐는 식으로 연주가 펼쳐지고 있다. 7월을 구경 나온 관객은 생각을 바꾸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비를 맞거나 땀에 젖을 각오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날씨가 사람을 압도하는 계절이다. 오늘은 맑고 내일은 흐리다. 오늘은 창문을 열어 모든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돕는다. 바람이 다가 먼 곳에 풍경을 데리고 들어온다. 새들이 그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울다가 웃는다. 새끼라도 낳겠다는 것인가. 장마는 징검다리처럼 7월에 놓였다. 저기는 물살이 빠르고 여기는 물이 얕다. 업어주거나 손을 잡아주고 싶은 사람들, 산이와 강이는 여름을 건너기 시작했다.

7월 1일 금요일에 산이는 1학기 기말시험을 마쳤다. 금요일 아침에 '이제 철이 들었다'고 선언하는 아이에게 헛웃음이 나왔다. 다 끝난 것인가, 이제 시작한 것인가. 앞으로 공부 잘하겠다고 그런다. 늘 그 '앞으로'가 사람을 괴롭힌다. 너는 앞으로 가라, 나는 지금이 좋다. 나는 지금 이불을 개고 밥을 먹고 그릇을 씻는다. 나는 지금 일기를 쓰고 책에 밑줄을 긋고 지금 친구를 병문안한다. 지금 할 것들뿐이다. 그러니 너는 앞으로 일찍 일어나고 앞으로 시간을 지키고 앞으로 책을 읽어라. 네 시간은 앞으로 흐르고 내 시간은 지금 흐른다.

아이들 아침 등교를 아무래도 도와야 했다. 친구들 몇몇이 모여서 택시를 타고 등교하거나 버스를 타는 일도 쉽지 않다. 누구는 늦게 나오고 그때마다 기다려야 하고 그러다가 지각을 하면서 저희들끼리도 갈등이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산이네 학교는 버스 노선이 없으니까 아침마다 택시를 타야 한다.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따로 등교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나섰다. 강이는 저번 일기에 쓴 것처럼 언짢은 일이 있었다. 그 덕분에 1주일 동안 학교에 남아서 청소를 해야만 했다. 선생님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지 그랬어? 그 말이 입 근처까지 나왔지만 아이가 아무 말하지 않기에 나도 그만 물었던 것이다. 친구라는 말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내가 아는 친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친구가 무엇인지 그마저도 학원에서 배워야 할 것 같은 아이들. 산이와 아연이는 그렇게 맨 나중에 둘이 남았던 것이다. 그래서 둘을 돕기로 하고 6월 12일 월요일부터 다른 아침이 시작됐다. 강이는 그때도 친구와 버스 타고 가는 것을 바랐기에 말리지 않았었는데 21일 수요일에 우리와 동승하게 된 것이다. 전부터 위기감이 있었는데 결국 화요일에 지각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좋다.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귀찮지 뭐가 좋냐고? 그런데 진짜 좋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고 이것이 또 한 번 내게 찾아온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이들 4살 때부터 등교를 도왔었다. 내가 하는 일은 아침에 바쁘지 않으니까. 산이 같은 경우는 중학교 3학년까지 아침 등교를 같이 했다. 물론 나중에는 아내가 도맡다시피 했지만, 결코 귀찮거나 싫은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들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자상한 사람이 아니어서 아이를 쓰다듬거나 상냥한 말투로 아이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차 안이 좋았다. 차에서 툭하고 물어보는 것이 편했으며 그렇게 얻어듣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엄마 생일에는 뭐 할래 묻거나, 어떤 과목 선생님이 무섭다거나 친구 이야기를 물었다. 용돈을 주게 된 것도 그렇게 나눈 이야기가 계기가 되었다. 말이 뜸해지면서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이 사람들 일상이다. 서먹해지다가 어려워지는 지점에 다다르면 옛날이 떠오른다. 서로 친했으며 서로 긍정적이었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옆에 있는 사람이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웃는 것보다 웃는 것이 좋다. 주어를 보기 좋게 생략해 봤다.

6월 21일 수요일 오전 7:54

안녕하세요. 기말시험을 앞두고 산이, 강이, 그리고 아연이 모두 공부하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졸린 모습들인데 아저씨 응원을 차 안에서 들으면 깜짝 놀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아이들이 신기해할 거 같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재미있을 거 같았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보낸 메시지가 방송에 소개되었다. 아이들 이름이 차례대로 불렸다.

6월 27일 화요일 오전 8:01

아저씨 안녕하세요. 지난주 등교하는 아이들, 산이, 강이, 아연이 기억하시죠? 오늘부터 기말시험입니다. 첫날 수학, 과학! 응원해 주세요~

당연히 기억한다는 멘트와 함께 응원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눈을 껌벅거렸다.

산이는 7월 1일 비가 많이 내리던 금요일에 시험을 끝마쳤다. '철이 들었다'는 말을 아침에 남긴 채 다음날까지 놀고 들어왔다. 시험지를 챙겨서 보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과목별로 공부하면서 잘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주말 동안에 적어보라고 권했다. 산이 시험지 중에 한문 과목이 먼저 눈에 띄었다. 박지원이 쓴 한시가 시험에 나온 것이다. 마지막 구절 自將巾袂映溪行 - 스스로 옷 갖추고 물에 비춰 보러 가네 - 이 주관식 5점짜리로 엮였다. 巾袂映溪行의 독음을 쓰라는 것이었다. 한 글자당 1점씩을 준다는 것이 정감 있어 보였다. 거기에 영영영영영이라고 써놓은 산이 글씨가 내 속을 꼬집었다. 그거 참 속 쓰리는 일이다.

주말에 몸이 좋지 않다는 친구를 보고 왔다. 통영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 묘소 앞에서 시간 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주 걸으면서 지내야 한다고 서로 끄덕였다. 아이가 없는 친구라서 산이, 강이 이야기는 따로 꺼내지 않았다. 자식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가 되는 신기한 존재다. 나는 산이나 강이가 내 문제라는 의식에서 조금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 아이들을 산이며 강에 맡기는 편이 더 이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해 바다가 어렴풋하니 편안한 것을 친구가 몇 번이나 화제로 삼았다. 땅을 볼 줄 몰라도 좋다며 오붓하다는 표현을 썼다. 산수가 오붓하니 마음이 너그럽다.

강이는 오늘부터 시험이다. 시험 첫날에 한문이 들었나 보다. 아침 등굣길에 한문 프린트를 다시 살피면서 손가락으로 무슨 글자인가를 쓴다. 뒤에 탄 고등학생들은 또 졸고 있다. 먼저 큰 아이들을 내려주고 강이네 학교로 향했다. 강이야, 천간하고 지지를 쓸 줄 알아? 처음이다. 문제집을 사주고 계획표를 작성하도록 가이드는 했지만 직접 문제를 풀어주거나 도와준 적은 없었다. 그 부분은 아이들이 직접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뭐가 나올 거 같다든지, 뭐는 꼭 나올 거라는 말로 아이를 돕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반칙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환경이 좋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벌써 큰 반칙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검지로 프린트 위에 쓱싹거리는 것을 보다가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약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어느새 학교가 보인다. 다시 말을 가다듬기로 한다.

강이야, 소풍 가는 날 도시락 준비하잖아. 갖가지 재료로 맛있는 김밥을 말잖아. 시험은 소풍 가서 먹는 김밥이니까 맛있게 먹는 거야. 준비는 그전에 다 하는 거고, 시험날은 소풍 가듯이 즐겁게 다녀오는 거야.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고 육교 아래에 멈췄다. 날이 맑다. 낮에는 더울 것이다. 아이가 내린다. 시험 많은 날들, 길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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