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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04. 2023

제목 없으면 안 돼?

日記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굴곡되어 있는 것을 추체험하게 된다. 빠르고 느리게 흐르는 구간이 생겨난다. 더구나 그 모양은 입체적일 때도 있다. 상승과 하강은 언제나 생겨나는 곡선이다. 어떤 순환을 이루는가에 따라 짧게도 길게도 물결을 이룬다. 특히 무엇인가 마주쳤을 때, 그것이 통로가 되든 입구나 창, 문 같은 것이라도 되면 시간의 표면 위에 엷게 부조가 생긴다. 마치 대문에 새겨진 돋을새김을 손바닥으로 만져보는 일처럼 시간이 흔적을 남긴다. 그런 글이 매끄럽고 보기 좋다. 시간이 차분히 녹아든 글, 거기에 사람이 푸르게 비치고 있다면 더 바라지 않는다. 비취옥이라도 하나 얻은 것 같아 몰래 흐뭇해한다. 누구에게 줄까, 이 좋은 것을 좋아할까, 궁금해지는 순간이 먹음직스럽다. 탐스럽다.

어제 월요일 아침에 두 개의 일기를 적었다. 내 일기는 5년짜리,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적기로 했던 1825일 되어가는 약속이다. 하루 지난 일들을 다음날 기록하는 일기다. 오늘은 비가 내릴 듯한 화요일이다. 지금 이렇게 적고 나면 내일은 7로 줄어든다. 많이 온 셈이다. 하나의 여정이 끝에 닿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시작이었나 끝이었나, 골몰해진다. 나는 저녁 6시 무렵이 좋다. 어둠 말고 새벽도 아니라, 오래 걸었지만 아직 다 오지 않은 곳, 도중이 마음이 간다. 거기 서서 양쪽을 돌아보는 일을 좋아한다. 멀어지는 쪽과 가까워지는 쪽, 그 둘의 손을 잡고 갈 곳 없어도 여유로워지는 순간을 아까워한다. 끼룩 저무는 것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고마운 것들, 살아서 돌아가는 것들은 모두 성스럽다. 황홀하다.

미상불 나는 손을 모으고 발을 모아 흩어지는 꿈을 꾼다. 송송 지나는 바람을 꾀어 그 끝에 나를 창창 묶는다. 조각이 된다. 가벼워야 바람을 놓치지 않는다. 바람이 된다. 한 바퀴만 돌자, 그러다 어디든 떨구어다오. 나는 내 일기를 바람처럼 쓴다. 아직 늦잠을 자는 우리 아이들은 싫으나 좋으나 자기 역사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녀석들은 제 나이만큼 - 저희는 알지도 못하는 시간들을 - 일기를 나눠 가질 것이다. 그 일기는 스무 살이 되면, 그 마음 하나로 쓰고 있다. 가끔 첫날을 펼쳐보기도 하고 세 살이나 네 살 먹어서 떠들고 투정하던 날들을 읽는다. 얼마나 보기 좋았던가, 그것이 행복이란 이름이었다고 속으로 다독거린다. 잘 지내고 있네, 다행이네, 그런다.

그러니까 월요일 점심은 소바를 먹으러 갔다가 허탕을 쳤다. 1시 가까이 기다렸다가 출발했는데, 그래서 바로 먹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정작 쉬는 날이었다. 첫째, 셋째 월요일은 정기 휴일입니다. 내일은 비가 내릴 거라는데, 오늘 먹어두려고 했었는데·····.

면은 아주 잘 걸린다. 그런데 모든 면이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가게마다 다르다. 어떤 곳은 맛있어도 속에서 걸려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고 어떤 가게는 어? 괜찮네? 그러면서 놀라는 데도 있다. 여름에는 소바나 냉면, 콩국수 같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나. 혼자 가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아예 일찍 가게에 들어서든지 1시쯤 자리에 앉는다. 여기는 2인 테이블이 있어서 그나마 덜 미안하다. 1주일에 한 번꼴로 여기 오고 있다. 머리 긴 손님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혼자 오는 손님이라고 그럴까. 아니면 잘 생긴?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귀찮아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어제는 더웠고 나는 허탕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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