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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10. 2023

1825

5년을 쓰다,


9시, 피곤하다.


수업을 마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썼던 조사 弔辭 서너 편을 읽었다. 라디오 방송 강좌 교재로 나왔던 것을 어디에서 구입했던가. 2000년 10월에서 12월 NHK 人間講座라고 쓰인 표지가 아직 깨끗하다. 어디에서 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을 샀던 이유는 여전히 생생하다. 追悼もまた文學なり。

23년이 걸려서 읽게 될 줄이야. 가와바타는 귀기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날렵하고 서늘하고 시큼한 펜을 쥐고 세상에 찾아온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남길 것도 남기고 싶은 것도 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차가운 땅에서 피는 눈꽃이었으며 기어이 펜 끝으로 온기를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글은 인정이 풍경소리처럼 번진다. 운다. 먼저 글이 울고 사람이 따라 운다.

잠깐 읽었는데 이런 사람이 문학이지, 싶다. 일본어가 띄엄띄엄 토막 나는 느낌이 싫다. 한시투를 닮은 그의 어떤 조사는 하냥 올려다봐야만 하는 구름 같았다. 공부가 필요하다.

1825번째 일기, 5년 전에 쓰기 시작한 일기를 마무리한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거꾸로 쓰겠다는 의지는 지금도 그대로다. 지나가면 더 볼 수 없는 것, 만질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을 실감하는 일이 나쁘지 않다. 하루는 간다. 그것을 조사 弔辭 하는 내 일기들, 나도 읊었구나. 애석한 것도 애통한 것도 쓸어 담았구나. 수고롭다. 그러니 피곤할밖에.

내일 아침에는 왜 일기를 쓰는지 거기를 손봐야겠다. 거기에 창을 내서 밖이 훤하게 보이게 할까, 아니면 굴뚝을 만들어 불을 피울까. 아니면 조그맣게 샘을 만들면 어떨까. 하여간 나는 왜 일기를 쓰는가. 한 번 물어보기나 하자. 그나저나 세월이 하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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