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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17. 2023

선유도行

걷고 보고 쓰고


 선유도에 갈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스스로도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김동리의 소설 제목과 같은 무녀도 때문일까, 스물몇 살에 선유도 우체국에 다녔다는 처남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을까, 그것은 묘한 감정이었다. 물을 마셨는데도 해갈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선유도를 벗어나면 곧 잊었지만 선유도에 들어서면 늘 비슷한 곳에서 길을 헤매는 듯했다. 이 미로에 빠진 것은 무엇일까. 마침내는 그것이 또 알고 싶어졌다. 감정 - 경계도 없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떠나가고 싶어 하는 에너지 - 이란 것은 나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색이다. 그에 어울리는 주제와 풍경을 찾지 못하면 늘 애를 먹는다. 저 색깔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지 막연해지면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어제는 그 바다가 회색에, 회색이 되기 전에 잔뜩 비를 머금고 점점 불투명해지던 대기와 사흘 만에 빛이 나는 서쪽 하늘, 그 한 뼘이 광택을 잃은 은색으로 한 데 어우러졌다. 풍경이 저만큼 혼자서 피어 있었다.

그때 알 수 있었다. 밝은 색으로 표현하고 싶은 흑백의 섬과 바다, 하늘 그리고 비가 그쳤던 짧은 하루. 나는 선유도, 그래 그 선'유'도',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仙遊島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목말라했던 것은, 건너가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설였던 것은 이름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름이 보고 싶었구나. 너를 닮은 그 이름, 이름을 빼닮은 너를 마주치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사람들이 장군봉에 가보라고 그랬을 때 일부러 더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길을 찾는 사람이니까. 길을 찾고 그 길 위에서 찍은 것들을 내 속에 담고 싶은 사람이니까. 다 알고 싶지 않고 반쯤만 알아도 길을 만나는 재미가 슬슬 종아리에서 허리춤으로 어깨까지 올라오는 것을 탐내는 사람이니까. 무엇보다도 내 마음대로 저것이 거기다,라고 정해 보는 모험을 아끼니까. 나는 고군산군도에 갈 때마다 무엇인가를 그렇게 찾았었나 보다. 아이들과 데크가 깔린 섬마을 구불길을 걸으면서도 찾았고 높다란 다리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석양을 바라보던 커플 사이에서도 두리번거렸다. 모래사장에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오래 듣기도 했다가 생합을 넣어 끓여주는 칼국수를 후루룩거리다가도 찾았다. 어디 있는 무엇이 나를 건드나, 잡히기만 해라!

겨울바람이었던지, 가을날 초승달이었던지, 나무 없는 저 바위산 같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찾지 않아도 좋다 싶은 날이 한 번쯤 사람에게 분다. 두루뭉술해도 살갑지 않냐고 묻는 바람이 살랑거린다. 정 情은 그렇게 든다.

나이 든 우리 - 아내와 나-는 일을 하고 사는 것에 고마워하기도 하지만 이렇듯 폭우가 쏟아지고 어디서 사고가 났다고 그러면 사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젊은 신랑이 죽었다거나 나이 든 노인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러운 생각도 든다.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영 다른 사람의 일 같지도 않은 것이다. 비를 손으로 막을 수도 없는 일이고 산다는 것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나란히 서서 한숨으로 다독인다. 청암산 호수 길이라도 걷자고 나선 길이었다. 일요일 오후 3시, 간당간당해서 미덥지 못하더라도 저 볕을 한 시간만 따라다니면 젖은 것들이 마를 것 같았다. 젖은 애상, 젖은 사연과 표정에 모락모락 김이 나더라도 좋을 것 같았다. 위로하며, 애도하며.

거기는 출입 통제, 물이 출렁거리는 호수가 날름거렸다. 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늘의 빛을 아끼고도 싶고 갈 곳도 없는 나는 그때 새만금 기다란 지평선이 서해의 수평선을 마주 대하는 고군산군도, 선유도가 떠올랐던 것이다. 오늘을 따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고흐를 만나러 남프랑스로 가는 나그네가 되고 싶었다. 선유도는 팔레트를 펼치고 붓을 놀리는 고흐가 되어도 좋을 것을, 나는 여태껏 그럴 줄도 모르고 맨밥을 먹느라고 헛심을 썼다. 그림을 그리는 그가 보고 싶었다. 아직 빛이 남아 있다.

장군봉이 대장봉이었던 거구나! 선유도를 찾으면 하늘에서 점점이 박힌 섬들을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에서는 돌아다닌다. 21세기는 그때 하고는 좀 달라도 되는 것을 슬그머니 웃는 것으로 변상 辨償. 우스개를 한마디 꺼내놓지 않으면 어떤 것이 나한테 날아올지 모른다. "지금 속으로 그랬지? 에고 내 팔자야, 오늘도 산이네, 산!"

비가 온 뒤라 산에 물이 척척했다. 젖이 불어 흐르는 것 같았다. 뒤따라 오르는 아내의 숨소리가 반반씩 섞였다. 지금이라도 반, 끝까지 가보자 반.

아들 이름이 산이니까, 나는 은근히 중의적으로 웃음을 유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요즘 산이는 시험을 망쳤다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 잃고 외양간을 부지런히 고치고 있다. 집에 있으면 아이들 공부 갖고 서로 주름 만들 이야기만 해대는데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그것이 다 개그 소재가 되고 만다. 개그, 내가 너를 웃기겠다는 소박한 그러나 아름다운 시도. 괜찮다, 나는 소만 잃었겠느냐, 괜찮다.


정상이랄 것도 없는 높이인데도 거기는 어떤 정상에도 뒤지지 않는 높은 곳이었다. 바다가 품 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하늘을 가지고 싶은 만큼 퍼담으라고 내주는 곳이었다. 여기를 보고 선유도라고 그랬었구나. 눈에 보이는 곳마다 신선한 것이 내가 선해질 것 같았다.

"있잖아, 내가 잠자리를 아주 많이 잡았던 해가 있었어."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고생한 아내는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어린것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터지는 비밀들, 이제는 보존 기간도 훨씬 지나서 터무니없이 가벼워진 이야기 한 토막이 휘 날아올랐다.

"내가 5학년 때, 우리 동네에 아파트가 처음 생겼거든, 그린 아파트. 거기 놀이터가 있잖아, 놀이터 없이 놀던 애들한테 그게 얼마나 보기 좋았겠냐고." 아내는 멀리 무엇을 보고 있을까, 겨우 숨이 평평해졌는지 이쪽을 보고 듣는다.

"그 아파트 사는 여자애였는데 3학년쯤이었을 거야." 나는 그 아이 이름도 기억하고 3학년이란 것도 여전히 생생하지만 대충 흐릿해진 것처럼 색칠했다. 아내는 어디를 보고 있다.

"그 아이한테 잠자리를 잡아 줬거든. 내가 뭔가를 처음 줬던 기억이야. 그것이 날아다니는 잠자리였어."

"그게 생각 나, 잠자리만 보면 그 해 가을이 하늘로 가득해."

나는 어쩌자고 자꾸 입이 가벼워진다. 아내는 어쩌면 느릅나무가 되어가는 줄도 모른다. 꾀꼬리는 느릅나무가 사는 숲에 깃든다지. 내가 하는 헛튼 소리들이 그녀에게 닿으면 노래가 될까.

내가 가진 추억을 아내는 각색하고 윤색하고 다듬어서 자기 옷으로 짓는다. 삶을 엮는다. 나는 소리 하고 아내는 듣는다. 서해 먼 데로 연꽃 하나 띄웠으면.

오래 거기 앉아서 어두워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기가 내 안에서 밖으로 내릴 것 같았다. 나도 비로 내릴까. 는 너를 적실까. 너를 씻어줄까. 너를 띄울까. 비가 많이 내린 세상이었지만 바다는 넘실대지도 않고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회색이 회색을 보듬고 있었다. 고흐는 바다에도 해바라기를 그려놓는다. 해 바라기, 바다와 해가 비를 달래는 무대를 오래, 바라보았다.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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