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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l 19. 2023

인사

그대는 고수의 향기가 난다


7월 이맘때쯤이면 다른 것은 몰라도 '매미 소리' 하나는 들려야 한다. 그래야 7월이다. 그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공기 중에 물기가 많으면 소리가 더 잘 전달된다는데 매미 소리가 없다. 연일 비가 내리고 있다.

비 장군이 거 보라며 거드름 피우며 수염이나 만지고 있다면 꽤나 분노할 것 같다. 내 며칠 비를 좀 내렸지, 아우성이더군. 못 살겠다고 다들 난리야, 난리.

물이 다 불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흐르는 인공 냇가에도 흙탕물이 넘쳤다. 물 위로 죽은 지렁이들이 둥둥 떠다녔다. 물이 없어도 죽고 물이 많아도 죽는다. 숨을 쉬어야 하는 것들은 거기가 어디든 이 빗속에 다들 죽을 고생이다. 땅속에 사는 것들도 땅 위에서 살아가는 것들도 하늘을 나는 것들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전부 생기를 잃어간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도 물이 차서 난리고 오래된 집들도 이참에 고민이 들 것이다. 허물고 말 것인가. 어쩔 것인가.

이게 하늘이 부린 조화일까. 과학을 믿는 사람들이 잘못을 짚는 가장 큰 실수는 할 수 있는 한 자기 탓은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내 탓이란 고백이 없다. 원인을 밖에서 찾는다. 비는 왜 쏟아졌을까. 사람들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자기는 거기에 넣지 않는다. 돼지들이 소풍 가는 모습이다. 그 순간 사람이 아닌 사람이 수억수천이다.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법정에라도 서야겠다. 내가 그랬습니다. 내가 함부로 설쳤습니다. 막 쓰고 살았습니다.

아침마다 인사를 한다. 나는 인사를 할 줄 모른다. 수많은 아침이 있었지만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7월 18일 강이는 방학을 했다. 방학 기념이라고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왔다. 방학 첫날이 중요하다며 평소처럼 일어났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을 먹지 않고 나서는데 오늘은 나와 같이 마주 앉아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방학을 어떻게 보낼 생각이냐며 첫술을 뜨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강이가 좋아할 반찬은 별로 없었다. 모두 내 위주로 챙긴 찬들이다. 호박이며 가지나물, 초간장에 절인 양파, 김치도 고구마 순이며 깻잎으로 담근 것들이라 강이는 어쩌면 학교가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군말 없이 국 한 그릇하고 콩자반으로 밥을 먹는다. 우리가 며칠 전에 구입한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이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옮겨갈 때, 아내가 출근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다녀올게요."

나는 여느 때처럼, 늘 그렇듯이, 항상 똑같이, 언제나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도 역시, "어"

응도 아니고 엉도 아니고 3분의 1쯤 바람이 빠진 소리, 대답도 아니고 인사도 아닌 그 말, '어'

뒤를 높이면 묻는 말인지 놀랐다는 것인지 저도 헷갈리는 그 짧은 단말마, '어'

인정도 없고 버릇도 없이 들리는 저 건성스러운 말, '어'

아, 나 때문에 비가 내렸습니다. 내 멋대로 마음대로 쓸데없이 쓰고 버리고 쓰고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건방졌습니다. 무책임했습니다. 비는···· 제가 맞아야 합니다.

나는 동작을 멈췄다. 그 소리가, 매미 소리가 들렸다.

"엄마, 잘 다녀와."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하늘에 구름이 보이지만 화창한 것도 사실이다. 베란다 철제 난간이 말랐다. 저게 말랐구나. 어제 날아와 거기 앉았던 새 두 마리, 머리가 다 젖었던 그 새 두 마리는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까. 해가 난 것도 같고 날 것도 같다. 오늘 일기에는 내 속에 꽃이 난다고 적었다. 난 生이며 날 飛이라고 쓴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인사는 그런 것이다.

나도 상대도 나는, 그것이 난 生 이어서 좋고 날 飛 아서 좋은 사귐, 내 사귐에는 그런 인사를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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