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처럼 Jul 28. 2023

꼰대가 깨운다

내가 쓰는 너의 일기


4시 20분, 서울에 놀러 가는 산이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4시 30분, 계속 울리고 있다.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이 없다. 그대로 5분 더 기다렸다. 나는 잠에서 깨지 않은 채 산이가 일어나서 저 알람 소리를 멈추기 바랐다. 2시 반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뒤로 한 번 더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잠은 내 관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고 있던 것이다. 새벽 5시에 친구들 만나서 ktx를 타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탓에 어젯밤 잠에 들면서부터 내 머릿속에서는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갖고 사는 병이다. 자기 일은 스스로 처리할 줄 알아야, 어둠 가운데 5분 더 기다리면서 내 불편은 쭉 다리를 뻗는다. 저래서 군대는 가겠나, 불침번이 없는 공군에라도 가야 하나.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그냥 놔둬볼까. 종류가 다양하게 '만약'의 경우들이 떠올랐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걸까, 내가 하는 것은 걱정일까, 불만일까. 저 정도면 들리지 않는 것이다. 들리지 않은 것을 탓하면 저도 얼마나 속상할까. 마땅히 대꾸할 말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깨우지 않은 것이 오래 두고 저하고 나를 괴롭힐 것이다. 산이 방에 불을 켰다. 꿈쩍하지 않는다. 알람만 요란하다. 모자며 양말, 준비해 둔 것들이 매트리스 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방학 전부터 저희들끼리 계획했던 1박 2일 아니었던가. 아침 7시에도 일어나지 못한 아이가 꿈도 야무지게 4시 20분 기상을 꿈꿨던 것이다. 엄마한테도 부탁하고 친구들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그러니까 내가 깨우지 않았어도 누군가 깨웠을 일이다. 다만 서둘러야 했겠지, 당황하든지. 결론적으로 내가 하나의 역할을 한 셈이다. 나는 탐탁하지 않지만 산이는 집에 아빠가 있다고 아무 감동도 없는 사실을 태연히 가슴에 얹고서 ktx를 탈 것이다.

나 같으면 샤워도 짧게 하겠는데, 나 같으면 머리도 안 말렸을 것을, 나 같으면 5시를 지키려고 서둘렀을 것을. 산이는 샤워를 하고 드라이기로 헤어스타일도 챙겼다. 5시 10분에 다녀오겠다며 거수경례까지 해가면서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선 지 17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다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음악을 빠트렸다고 챙긴다. 나는 보면서도 안 보는 것처럼 이 글을 쓰고 있었다. 솔직히 하나 말하자면 저 아이가 부럽다. 나는 서둘러 놓고도 불안해하는 사람인데 산이는 내게 있는 그것이 없다. 하지만 산이도 방학이 되면 계획표를 그려놓고 제 방 책상 위에 붙여 놓는다. 누구나 그렇듯 계획표 따로 저 따로 제각각으로 살지만 마음이나 생각이란 것이 있어서 지키지 못할 거라도 저렇게 그려놓는다. 알람 시간을 정하고 그에 맞춰 일어나겠다는 그 조각보 같고 구름 같은 마음에 나는 바람이 되어 줄 것을 다시 고요해진 아이의 방을 들여다보면서 다짐한다. 너는 나와 달라서 그것이 안심이 된다. 그 말을 함께 묶어서 떠나보낼 것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친구 다섯이서 저희들끼리 만끽하는 시간이며 공간이 황홀할 지경일 것이다. 자주 여행을 하라고,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일러주는 것도 꼰대짓이 될까. 발자국만 보일 것을, 이렇게 저렇게 갔다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길을 삼게 할 것을. 그것이 내 숙제다. 내가 너한테 풀어야 할 내 숙제다. 그래, 잘 다녀와라.

작가의 이전글 신경림 ㅡ 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