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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01. 2023

지리산 둘레길 10코스

우리가 걸으면서 나눈


몇 도나 됐을까?

폭염 경보에 야외활동 자제, 온열질환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익산을 출발해서 장수와 함양을 지나 단성 IC로 빠진 시각이 오전 9시. 우리는 지리산 둘레길 10코스 출발점이 되는 위태 마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삼거리 식당에 들어섰다. 이른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왁자지껄했다. 사투리의 향연, 산이와 강이는 저희들끼리 웃어가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투리를 흉내 낸다. 많제~ 그제? 끝을 끌면서 그 앞은 힘주어 올린다. 낯선 것이 유쾌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무슨 일이든 웃기 시작하면 그때까지 무관심하던 몸속의 세포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핀다. 관심이 기지개를 켜고 막 일어나려는 것이다. 아직 더 자고 싶어 하던 아이들을 깨워 2시간 넘게 달려온 길이었다. 줄곧 차 안에서 꾸벅거리며 말이 없던 산이와 강이가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 밥 앞에서 우리는 흥겨워졌다. 가끔 자랑삼아 내가 들어간 집은 밥이 맛있다고 떠드는데 아내가 그 증인이다.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 사람이 솥밥을 한 공기 챙기더니 눌은밥에 물을 부어 구수하게 우러난 것까지 먹었다. 엊그제 광양 백운산을 혼자 다녀오면서 기분이 좋았던 대목이 또 생각난다. 크고 넓은 산은 오르고 내리는 길이 많다. 먼 길을 운전해서 산에 가는 나 같은 경우는 늘 원점 회귀하는 식으로 산에 오른다. 갔던 대로 오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는데 아주 가끔 삼거리, 그래 '삼거리'에서 무심코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언젠가 진안 운장산에서 그리고 주왕산이 있는 청송, 절골계곡을 오르다가 고생했던 여름이 특히 기억난다. 백운산에서도 내려오는 길을 놓치고 빙 돌아야 했다. 문제는 근육이다. 종아리 근육이 더 힘을 내지 못하고 떨리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땅을 딛고 산을 내려가야 할 발목, 무릎, 발 전체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됐다. 몇몇 풀벌레는 가늘디가는 다리로 운다고 쓴 손택수의 시*가 아니어도 쉰 살이 되고는 내 다리가 흐느끼는 것을 몰래 듣는 날이 있다. 다리만 그러냐, 허리도 어깨도 이따금씩 뱃속도 엉엉 울더라.


어디쯤인지도 모르면 얼마나 가야 할지 가늠할 수도 없다. 내려왔던 만큼 다시 오르는 것은 더 무모해 보였다. 체력도 시간도 물도 없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럴 때 내가 믿는 것은 그래 봤었던 경험들이다. 결국 산에 있는 모든 길은 아래로 향해 있고 나는 아래로 가고 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어둡기 전에 닿기를 바랄 뿐이다. 많이 내려왔다 싶은데 아직 길이 나오지 않으면 사람이 주눅이 든다. 백운산에서 내가 기운 차리게 도왔던 것은 어이없게도 '소바'였다. 땀을 실컷 흘린 탓인지 다른 것은 먹고 싶지 않고 그 순간 소바 한 그릇이 생각났다. 돌 위에 앉아 쉬면서 광양에 있는 소바 집을 검색했다. 주왕산에서는 캔맥주였었는데, 이렇게 그때그때 절정이 다르게 표현되는 인생은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나는 이 감각이 산을 내려가면서 엷어질 것도 알았다. 그리고 산 밑에 내려와 계곡물에 첨벙 빠져드는 순간 모든 것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모든 것들로부터 모든 것의 해방. 깨끗하게 하루가 막을 내리는 무대에 단순함이 고요했다. 돌아갈 것, 차에 시동을 켜고 소바는 다 잊었다. 하루를 산에서 보내고 그 물에 씻었으니까, 두 시간짜리 선인 仙人은 되지 않을까. 내가 쌀이 되고 밥이 되었으면 싶었다. 누구에게 밥을, 나를. 괜스레 순해진다는 뜻을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거기를 지나쳤다. 어? 방금 뭐였지?

나는 유턴을 너무 안 한다. 그러나 너무 잘할 때도 있다. 그대로 고속도로에 접어들면 후회할 것 같았다. 유턴.

내가 놓쳤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어디 한구석에도 '소바'라는 말이 없었다. 대신 '메밀'이라고 부르는 집이다. 광양에 들르면 찾아가 보라고 식당 이름이라도 적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 이기와 이타를 버무려 내어놓았다고 하자. 나는 우연과 정성에 기대는 풍경이 좋다. 그림 같은 일들이 사람에게 생겼으면 한다.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는 소절에는 어떤 화음이 좋을지 하나씩 떠오르는 것들을 소리 내 들어본 기분이다. 밖은 덥지만 노래는 부를 수 있다. 어쩌면 노래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날이다.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진안 마이산이 보이면서 라디오에서는 반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돌로레스 오리어던 Dolores O'Riordan의 신비한 음성이 공간을 채웠다. 나는 저 여자를 오래 알고 지낸 듯한 감상에 빠진다. 아마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을 몇 개 골라서 상자에 담는다면 내가 저 소리를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감상일 것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으면서 그녀가 부르는 Dream을 따라 부른다. 모르면서 따라 하는 것이 4살 적 산이를 닮았다. 오늘은 더워도 아니면 더워서 좋았다고 미리 적어놓을까.


마을을 지키는 것은 감나무, 매미소리, 한참 푸른색이 짙어지는 벼, 그리고 예쁠 것도 없는 담장들이었다. 고즈넉하다는 말을 일러줬던 지난가을 날 산행, 형용사는 사람 그림자를 보고 쓰는 말이지. 마을 정류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짐을 챙기고 옷도 갈아입었다. 낮이었지만 적막했다. 낮이어서 적적했다. 한 사람도 못 봤다고 그러는 강이에게 웃음을 날렸다. 날이 덥잖아, 오늘 같은 날 둘레길 걷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지도 몰라. 챙이 긴 모자는 산이와 내가 쓰고, 엄마와 강이는 목덜미부터 얼굴까지 가려주는 모자를 썼다. 이번 둘레길 10코스를 위해 특별히(?) 장만한 아이템이다. 최고는 몸빼라고 부르는 고무줄 통바지였다. 내가 몸빼가 몬페もんぺ인 것을 알고 놀랬던 교실, 선한 눈빛에 다리가 불편했던 고지마 선생님. 모두 옛날이야기가 됐다. 여름 산을 걸을 때는 몸빼만 한 것이 없더라고 나는 어디에 가서 외치고 싶다. 만약 몸빼를 입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이제는 그 상상만으로도 아슬아슬하다. 몸빼 4인방, 출발!


산이는 방학이 3주, 첫 주 1박 2일 친구들과 서울에 다녀왔다. 강이는 성당 여름 수련회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번 우리 가족 여름휴가는 따로 일정을 세우지 않았다. 강원도나 제주도가 좋겠지만 물가도 만만찮다고 하고 서둘러 해치우 듯이 보내는 휴가는 언제나 피하고 싶다.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날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이유 하나에, 3월에 둘레길을 걷고 그 뒤로 공휴일에는 늘 비가 내렸다. 오죽하면 비 오는 5월 대체휴일에 산청에 와서 밥만 먹고 돌아갔을까. 시도했다고 꼭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레길 9코스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두 번이나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이 오고 말았다. 9코스는 난이도 하라고는 하지만 나무가 없는 길을 오래 걸어야 하니까 어제 같은 더위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10코스 먼저,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겁이 없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아낄 요량으로, 그리고 아쉬운 대로 휴가 기분을 내보려고 이틀 동안, 10, 11코스를 걸을 생각이었다. 방금 일어난 아내 얼굴이 반쪽이다. 다이어트, 다이어트 그러더니 어제 하루 고생한 탓에 핼쑥해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이 많은 부모이면서 나름 산이와 강이에게 노력하는 편이다. 재미 삼아 둘레길 3코스를 걸었던 5월이 강렬했던 것이다. 이듬해 봄, 1코스부터 제대로 시작된 지리산 둘레길 걷기 프로젝트, 그 3번째 해다. 1년에 3코스, 두세 번 지리산을 찾는다. 공휴일에나 쉴 수 있는 내 처지가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갈 수 있으면 행복해한다. 여태 그 고마운 것으로 걸어왔던 것 같다. 아이들도 보조를 맞추고 동행하는 것이 내내 기특했다. 어제는 제일 힘들었던가, 더 많이 멈췄고 도중에는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낮잠도 잤다. 물이 흐르는 곳을 만나면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고 싶어 한다. 나는 이 모든 동작들이 영화 같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 그 빛이 싱그러운 계절, 여름. 궁항 마을에서 2시 반까지 누웠다가 고개 하나를 넘는다. 양이재라고 했던 것 같다. 양 씨와 이 씨 성들이 모인 동네로 들어가는 고개, 재미있다. 그 고개가 가팔라 모두들 숨을 헐떡거린다. 개인적으로 깔딱고개라는 이름이 별로다. 조금 높은 산마다 칼날능선이니 깔딱 고개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양이재 위에 올라서 우리는 3코스 하늘길을 이야기했다. 거기는 얼마나 높았냐, 시간이 지나면 고생도 순해지기 마련인데 하늘길 아래서 우리는 정말 힘들었던가 보다. 하느님 만날 뻔 했었다고 웃는다. 어서 와, 천국은 처음이지? 그런 멘트로 잠시 웃었다.


나란히 옆에 앉은 산이와 강이에게 나는 왜 걷는 것 같냐고 물었다. 강이가 불쑥 그런다. "장수하려고"

웃었다. 내리막길이어서 숨소리가 한결 편해졌다. 강이는 천식이 다 낫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구호가 달라졌다. 빨리 와, 그러던 것이 '천천히 와' 그런다. 가래가 끓는 것처럼 속에서 소리가 난다며 강이가 미안한 표정, 힘든 표정, 어쩔까 싶은 표정, 골고루 내놓는다. 어떤 것은 허공에 날리고 어떤 것은 주워 담고 어떤 것은 그 자리에서 푼다. 방정식 같은 사람들마다의 인생이다. 오르막에서는 천천히, 내리막에서도 천천히, 그러다가 언제 다 갈까. 오래 살면 그런 걱정이 덜해진다. 내가 더 살았으니까 덜 요란해도 괜찮을 것을 혼자서 다짐한다. 길에서 배운 것들 아닐까. 끊임없이 그 하나를 속삭이고 있는데 나는 참 우둔하다. 그래서 자주 그 길에 서서 지나온 것들을 고쳐놓는다. 여기는 꿰매고 저기는 붙이고 거기는 깎아내기로 한다. 10코스 내리막에는 대나무가 100만 대군이다. 어쩌다가 상황버섯을 하나 찾았다. 아내가 발견하고 내가 땄다. 여름에는 산에 모기가 많다. 물도 많이 마셨다. 땀을 그만큼 흘렸고 10코스 종점, 하동 호수가 보였다. 산이가 내일은 못 걷겠다고 선언했다. 걷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같이 있고 싶은 것, 그 말이 보였다. 하동호에는 마을이 잠겼다고 한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지은 정자가 정갈했다. 거기 누워서 바람에 몸을 맡겼다. 아내는 사실 감기 기운이 있었다고 그런다. 글쎄, 기침을 하더라니.

강이, 저도 힘들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없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린다. 나? 나야말로 기적 아닌가. 내 허리는 반쪽, 내 무릎은 너덜너덜, 그리고 내가 늘 말하잖아. ' 속없는 사람'이라고.

슬쩍 말을 꼬아서, 산이가 집에 가자고 하니까 그러지, 뭐! 저녁도 맛있게 먹고 싶었다. 내가 가는 곳은 맛있으니까. 하늘에 달이 동그랗게 큼직했다. 각자 짐을 챙겨 1704호로 올랐다. 오늘은 오르는 날, 집 앞에 케이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태영이가 놓고 간 케이크다. 나는 미안한데 저는 내가 고마운, 그런 사이가 아무래도 좋은 사이 같다.


씻고 거실에 나란히 누웠다. 오이 마사지가 피부를 진정시키는 데는 최고다. 다른 것을 안 해 봐서 최고라고 떠드는 것도 뭐 하지만 무슨 오일이라는 말이 건네지 못하는 친근감이 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 손택수 풀벌레 울음소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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