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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는지

그림에 은하수를 보던 날

by 강물처럼


2018년에 쓴 것이 거기 있었다. 5년 전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 사는 이 장로님은 매일 기도했고 고창에서 화원을 한다던 여자분은 씩씩하게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며 웃자고 사진을 올렸다. 친구에게 받은 격려 편지를 올린 사람, 환자들 여럿이 산책 나왔다가 들렀다며 카페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얼굴들은 모두 내가 알던 사람들이다. 병원 이름으로 만들었던 암 환자들 밴드가 개설 몇 주년이라며 자동으로 안내 멘트가 떴다. 잊지 않은 채 잊고 있었던 봄날 꽃 같았던 날들이 흩날렸다. 잠깐 다녀오고 싶은 곳이 열렸다. 길이 생겼다.

사진이 글보다 좋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오래전 글에서 푸석거리며 날리는 먼지, 그 먼지를 일일이 비추는 빛, 환한 빛 속에서 드러나는 맨 몸뚱어리, 내가 거부하고 싶은 나를 발견하고 하나씩 줄을 긋는다. 그런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사라지지 못하고 묵은 내를 풍기는 페이퍼와 페이지들, 부엽토가 되지 못하고 미라처럼 천에 감겨 옛날이라는 이름이 된 내가 거기 있다. 사진은 그나마 웃잖아. 그랬었네, 그러면서 아련하고 반갑고 슬프기도 하잖아. 위트는 있어도 위선적이지 않고 그악스럽지도 않잖아. 가난한 것이 창피하냐며 되묻고 따지는 것이 사진처럼 야무질 수 있을까. 사진 같은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순도를 높여서 절정에 다다를 것처럼 빛나는 순간에 탁 터뜨리는 플래시 같은 자음과 모음으로 그게 너였어, 이게 나였어, 그러는 수작 手作을 부리고 싶다.

벽에 기대어 스님을, 스님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봉우리를 동시에 눈에 넣고 있었다. 집을 지으면 저만큼 넓은 창을 가지리라, 하늘이 푸른 산빛과 뒤엉켜 씨름하는 날들을 곱게 보아주리라, 날은 좋은데 까무룩 잠이 들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집중, 집중하고 싶은 순간들이 그즈음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나비의 날갯짓보다 엷고 희미한 손짓이며 눈짓으로 웃음 짓던 사람들이 있었다. 도솔암에서 차를 마시고 점심 공양을 하고 돌계단에 서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돌아오던 날, 그날도 나는 사진을 찍지 않고 문장을 썼다. 서툰 웃음을 짓는 대신 손으로 짓는 말로 사람들을 담고 싶었다. 내 손이 눈빛보다 낫고 표정보다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그때는 그럴듯했는데 다들 돌려 봤었는데 어제는 혼자 보면서도 어색했다. 더 소박하지 못했을까, 더 솔직하지 못했을까, 더 꽃무릇 같았다면 어땠을까. 불이 켜진 꽃처럼 황홀해서 꽃부리가 꽃부리로 꽃술이 꽃술을 향하며 오선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잎과 술에 넓게 가느다랗게 홍색에 검은 테를 두르고 볕 마당에 나서서 별이 뜰 때까지 놀며 자며 웃었으면, 그랬으면....

스물세 명이나 되는 멤버들은 어디에 갔나. 몇 주년이라는 알림 메시지가 연속으로 쌓여있는 것이 꼭 사람 없는 집에 배달되는 일간지 같다. 2018년 8월 25일 오전 9:50 그 시간에 이런 마음이었구나.

- 좋은 인연으로 만난 지인님 비롯한 모든 분들께서 걱정하셔서 몇 자 올립니다. 사랑과 존경하는 지인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며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잠깐 머물다 가는 인생, 서로 행복한 세월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분의 인사를 기억한다. 수척해졌고 이제 머리에 모자를 쓰는 것도 피곤해 보였다. 저 끝에 찍은 느낌표는 얼마나 당찬 표현인가. 얼마나 가슴 따뜻한 말인가. 모든 이에게 늘 마지막 인사였던 것을, 웃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단풍 든 가을 백양사를 거닐면서도 우리가 나눴던 것들은 낙엽 빛깔 같았다는 것을, 오래된 사진과 글과 기억이 일러준다. 잘 지내고 있는지....


가을을 여는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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