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사무이*라고 그런다. 하다는 피부, 살갗을 말하고 사무이는 춥다는 뜻이다. 꼭 어제 같은 날씨에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글쎄 어디에 가까울까. 서늘하다와 쌀쌀하다의 중간쯤이 될까. 반소매도 긴소매도 어느 쪽을 골라도 상관없는 날씨다. 일주일 넘게 통 걷지를 않았는데 어제는 함라산에 다녀왔다. 타고 다니던 차를 한 대 정리하고 나니까 집 근처 아니면 다녀올 데가 없는 입장이 됐다. 그것은 좀 안 됐지만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그런 식으로라도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반년 가까이 되어 가는 듯한데 오히려 잘 정리했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 든다. 사실 사람만 부지런하면 버스를 타고서도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 점이 아쉽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들이가 된다. 그래, 사람은 굶어봐야 배고픈 줄 알고 또 맛있는 줄도 안다. 보조석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경치만 보고 있어도 기분 전환이 된다. 가을은 색으로 온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계절은 모두 색을 신호로 움직이는구나. 봄, 그러면 다채롭다는 인상이 먼저 훅 끼친다. 여름, 초록이 물들어 가는 시간 아니던가. 가을은 누가 뭐래도 갈 褐, 갈색이다. 화려하고 탄탄하고 짙었던 것들이 수수하게 침착하게 나지막하게 가라앉는 고요를 깨우치는 사방 세계가 펼쳐진다. 그 갈색에 거주하는 순백의 탈피를 목격하는 겨울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서는 사뭇 정결하다. 끝이며 시작을 그처럼 깨끗하고 차갑고 온화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계절은 자연이 아끼는 형용이다. 그렇게 차리고 외출을 한다. 자연, 그대의 자태는 하늘이며 땅 같다. 물이며 바람, 안개로 몸을 두르는 그대는 눈부시다. 계절은 환 幻이다.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요술이다.
우성이 아빠하고 걸으면 늘 교실 하나가 따라온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따로 없고 자기가 공부한 것들과 궁금한 것들로 걸음 하나하나를 차곡차곡 밟고 간다. 밟으면서 밝아지는 현장이 함라산 오솔길에 있다. 나는 그의 천진난만했던 한때를 즐겨 듣는다. 당구장, 당구장, 미팅, 미팅, 카드, 카드, 그리고 운전으로 이어지는 음계로 속삭인다. 일본어가 페라페라*됐으면 좋겠다고 입맛을 다시는 그에게서 사람 닮은 자연, 자연 닮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것만으로도 유쾌하다. 그만하면 행복하지 않냐며 추켜세운다. 아무래도 만물박사가 되고 싶은 것이 그의 속내는 아닐까. 아프리카 탄자니아 수도가 어딘 줄 아냐며 '도도마'라고 일러주기에 그럼 아일랜드 수도는? 그랬더니 단번에 '더블린' 그러는 것이 약 올라, 아이슬란드는? 그러고 있었다. '레이캬비크' 들어보기를 처음 들었다며 걸음을 멈추고 저장을 한다. 그리고 어제 그 이름을 꺼내 보인다. 칸기에이, 그것이 일본어로 홍어라고 그런다. 거침없이 몇몇 단어로 나를 윽박지른다. 그러나 즐거운 것을, 나는 그 표정이 좋다. 내 희미한 기억들이 그가 꺼내놓는 단어들을 반긴다. 오, 히사시부리!* 인사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바쁘면 이 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동행하는 산책은 마치 단편으로 찍는 독립영화 같다. 소극장 공연 같고 짧은 여행 같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래요?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으니까 이만하면 벗이라 부를 만하다. 몸에 좋은 산길을 거닐고 몸에 좋은 말들을 나누고 몸에 좋은 밥을 나누는 사이, 우리는 그렇게 어느 계절이든 노를 저어 건너왔던 듯싶다. 같이 노를 저어 가자, 옆구리에는 금강이 있고 머리에는 하늘이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이!
오늘도 사거리 하나에서 잠시 헤맸다. 다음이지요? 다급하게 묻는 것이 몇 번이었을까.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아저씨가 기가 막히게 길눈이 어둡다. 그런데 운전이 직업이다. 절묘한 배치다. 누가 그랬을까, 누구의 작품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그가 운전하는 300번 버스를 탄 적이 없구나.
그래도 옛날에는 어떻게 어떻게 다 운전하고 그랬어요, 젊은 시절 그는 트럭을 몰았다. 지금은 지도 볼 일도 없으니까 아예 길을 찾을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네비 없이 찾아다녔었는데요. 산모퉁이도 없는 길인데 어디쯤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이쪽으로 몰았을까. 날이 좋다고 그랬던 참이었나, 남들 하는 도박은 다 해봤다는 자랑 끝이었나. 나는 수덕이 하고 창기, 영기하고 쳤던 10원짜리 고스톱이 전부인데 700만 원을 잃고 그 돈을 다시 따느라 고생했다는 회고담이었구나. 돈을 잃고 따다는 뭐라고 하지요, 일본어로? 그거, 이기고 진다고 그러는데, 그러다가 그 말로 흘러들었구나.
'편리의 맞은편에는 어떤 말이 거기 붙어 있을까요?'
우성이 아빠도 이런 식의 내 물음에 익숙해졌다. 글쎄요, 편안함? 아니지, 맞은편이니까 좀 반대가 되겠지...
불편인가요?
아니, 거기에는 '게으름'이 머물고 있지요. 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는 거. '나태'라고 하는 거.
그가 끄덕인다.
맞아요, 어제 방송에서 위조지폐 방지 홀로그램 나오면서 뭐라고 그랬었는데 그거 찾아봐야지 그러다가 잠깐 사이에 잊어버렸다니까요. 재방송이어서 다시 들을 수도 없는데, 그게 두고두고 아깝네. 언제 다시 그 말을 듣겠냐고요.
그러면서 스키토오루* 뭐라고 그랬었다며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 불편함이 나를 끌고 갈 거네요, 많이 불편할수록 사람이 부지런해지거든요.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고.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보왕삼매론이 어떤 책인지는 모르지만 거기 나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됐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따라가면 된다. 선인들의 지혜를 묵묵히 따라 사는 것이다. 많이 아프면 힘들지만 아무 데도 아프지 않으면 가난하다. 몸은 마음이 입는 옷이고 마음은 몸이 머무는 집이라서 소홀히 할 수 없다. 몸이든 마음이든 적당한 것이 좋다. 자라 보고 놀라본 가슴이 솥뚜껑 무서운 줄도 아는 것, 통쾌하고 이타적이며 인간적인 문법이다. 사람을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어느 시대든 사람은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 선생님이든 버스 기사든 관리소 직원이든 환경미화원이든 그게 누구든. 몸에 병이 없어서 힘이 나서 막하는 거라면 그쯤에서 돌아오라. 돌아오는 길을 잃지 않게 충분히 조심하고, 그대, 돌아오라.
겨우 해발 240미터 높이를 오르는 길에 이만큼 무성한 이야기를 수확하는 함라산이다. 반가운 소식을 하나 들었다. 함라산 국립 익산 치유의 숲 조성 사업이 내년이면 완공된다고 한다. 그랬구나, 10년도 더 걸어서 온 이 길에 그런 의지가 숨어 있었구나. 사람들이 찾아와서 잘 걷다가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내가 듣지 못해도 계절마다 피는 꽃을 보면 알 것이다. 누가 연애담을 풀었구나, 누가 고달팠던 시집살이를 여기다가 이렇게 널어놓았다냐, 어라, 자식 자랑도 해놨네, 그러면서 그러면서 그날도 다녀가리라.
* 하다 사무이 ㅡ 肌寒い 으슬으슬 춥다.
* 페라페라 ㅡ ペラペラ 술술, 펄럭펄럭.
* 히사시부리 ㅡ 久しぶり 오래간만.
* 스키토오루 ㅡ 透き通る 투명하다, 소리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