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엄마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깼다. 피곤했구나 싶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병원에 췌장 담도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하는데... 그 생각 때문인지 잠결에 듣는 이런 소리도 반가울 때가 있구나 싶었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그야말로 추적추적 들려왔다. 이래저래 밤이 길었다.
26일 일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 뒤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사흘째 아침이다. 오늘은 추석이다.
담배를 1년에 한 번 산다. 한 갑을 사서 한 달이나 두 달 걸쳐 피운다. 누가 담배 피우냐고 그러면 아니요, 그런다. 언제 사는지는 정해지지 않고 가만 앉아 있기 힘들 때 사는 것 같다. 앉아서 책을 보는 것이 내 생활의 기본인데 그 동작이 불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백가지 약이 무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6시간 일하고 6시간 공부하고 6시간 잠자고 6시간 생활하는 일상을 사랑한다. 공부하는 6시간 중에 3시간은 글을 쓰려고 하는 편이다. 5천7백7십7개, 숫자나 개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달리 그 숫자들이 나를 위로한다. 재미있는 것은 쓸 만한 것이 없는데 소중하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걷는 걸음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가을이 들면 바람이 분다. 공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나도 본 적 없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은 살갗에 닿지도 않고서 나를 떠민다. 날아가고 싶은 날들이 자꾸 생겨난다. 그러다가 바람이 세지면 나는 어느 산마루에 앉아서 여기는 어쩐 일인가, 가을 오후 햇살을 촘촘히 다듬다가 불쑥 인사를 던지는 산 할머니를 만나곤 한다.
비는 내리고 산이는 중간시험 두 번째 날인데 늦는다. 기다리는 것은 반가움이 다듬어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화산처럼 폭발을 예비하기도 한다. 8시 5분, 모현 대교 오르막에서 고현 교회 앞까지 차 꼬리가 빨갛게 꼬리를 잇고 있을 것이다. 20분까지는 학교에 못 간다. 비가 쏟아진다. 가을비가 이래서야.... 그때 나도 쏟아졌다. 우악스럽고 사납게 소리쳤다. 엄마는 아침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산이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엄마하고 자야 잠이 온다던 아이다. 그 아이에게 엄마를 던졌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바쁜데 고등학생이나 된 놈이 정신이 없다고 소리쳤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당황하지도 못하는 눈치다. 그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몰아세웠다. 한 번을 제시간에 나오지를 않냐며 그런 공부는 해서 뭐 하냐고 쏘았다. 그대로 학교 가지 말라고 그랬다. 욕을 해댔다.
나는 '말'로 사람을 기억한다. 이쪽에 앉으세요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친구가 있고 너 성당 다니지? 그 말이 나에게는 어느 해 봄날을 대신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노래 Do Re Mi, 그 노래와 늘 같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우리 할머니는 어머니를 좋게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싫지는 않았지만 편하지도 않았던 까닭은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했던 말, 그 사람이 썼던 문장이 잘 잊히지 않는다. 나는 오래된 수첩 같다. 산이는 다 잊고 그날 아침으로 나를 떠올릴 수도 있다. 냉정했다고 두려웠던 아침이었다며 말을 꺼낼지도 모른다. 그날 담배를 연거푸 피웠는데도 좀처럼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 담배를 챙겼다.
평택에 사는 동생네가 독감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 추석을 병원에서 보내게 됐다며 미안해했다. 그럴 것 없다. 어머니가 그것을 서운해할 만치 건강하지도 못하다. 대충 대답을 하고 짐을 꾸렸다. 날 수는 없어도 날고는 싶으니까 배낭에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테이블에 깔린 지도를 훑어보다 길이 막히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았다. 명절 연휴에 우리는 지리산 둘레길 트레킹을 하기로 1달 전에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연휴 첫날 일찍 길을 나섰다. 가야산에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해인사가 있는 그 가야산은 근 10년 만이다. 해인사는 이름만큼 거기에 닿는 길이 근사한 절이다. 단풍의 바다를 건너왔던 듯, 노랗고 붉은 물에 흠뻑 젖었다가 들어서던 사찰 큰 문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해인사를 들르지 못했다. 그 앞을 지나 가야산 뒤쪽으로 차를 세웠다. 거기 능선이 가야산을 조망하기 좋다. 합천 해인사라고 그러는데 가야산은 거창군이나 성주군에 더 가깝지 않나 싶었다. 전라도 살면서 성주에 들를 일은 거의 없는 편인데 이렇게 산이라도 있어서 오게 된 것이 반가웠다. 산에 올랐다가 성주에서 김천까지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실까, 김천 직지사 근처에는 훌륭한 커피 가게가 있다. 나는 그 맛을 잊지 않는다. 연휴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여유다. 사람마저 호방하게 만들어 어제 일도 그제 일도 살살 옅어지고 있었다.
백운동 탐방지원센터에 멈췄다. 올해는 '백운'이란 이름과 연을 맺는 것 같다. 여름에는 광양, 백운산을 올랐지 않았나. 거기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그야말로 '가지 않은 길'이 펼쳐졌다. 왼쪽은 만물상 탐방로, 오른쪽은 용기 골 탐방로, 두 입구 사이의 거리는 10미터 남짓. 그 10미터가 얼마나 큰 차이를 내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아니 대충을 알았지만 그것은 머리로 아는 차이였고 내 몸과 마음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망설일 줄 아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것도 모두 필요하다. 상황마다 사정이 다르고 사람마다의 사정은 그보다 더 심하다. 만물상이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지, 몸과 마음을 수련하기에 그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르는 길이 만물상인 것을 다 오르고서야 알았다. 백 걸음을 오르고 숨을 고르면서 바라다보는 바위 군상들은 군사 같았으며 신하 같았고 기다랗게 합장하고 늘어선 나한들 같았다. 부처 앞에서 부처가 되어 가는 돌을 쓰다듬으며 나도 그 세월 한쪽에 부호 하나 찍어둔 것 심정이었다. 소나무들이 곡예사 같았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바위만 있었던들 산이었을까 싶었다. 개미가 기어가는 것이 보이고 노란 나비도 나를 따라 능선을 올랐다. 잊으려고 해서야 잊을 길이 없다는 것을 산에나 와야 안다. 숨이 가빠지면 하나만 생각한다. 숨, 숨 쉬는 것만 남는다. 내가 벗은 줄도 모르고 벗어놓은 시름과 권태, 욕구는 누가 가져갔을까. 그 쓸데없는 누더기들을 누가 몰래 숨겼을까. 하늘 파란 것이 산국화 흰색과 어울렸다.
상아덤*에 올라서 이곳이 가야 땅이었을 시절을 가늠하며 멀리 옛날을 보았다. 스르르 감기는 것이 좋았다. 눈을 감고 호흡을 기다리며 단정하게 앉았다. 이제 좀 편안하구나, 가까이 있는 것을 멀게 하고 멀리 있는 것이 가까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구름처럼 오고 가거라, 기억이든 이름이든 아들이든 딸이든 내내 그래도 좋을 것 같은 오후가 거기 있었다. 거기에서 올려다본 상왕봉은 아득했다. 어쩐지 더 피곤하고 더 흔들리는 것이 그만 내려가야 할 것도 같았다. 저기를 3시까지 오를 수 있을까.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갈 수 있을까. 허리는 잘 견뎌주고 있구나.... 그 많은 생각 중에 내게 정작 도움이 됐던 것은 그 하나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발밑에서 톡톡 걸렸다. 여기 다시 오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이제 10년 더 지나면 어느 노인이 되어 기를 쓰고 여길 오르겠다고 덤비겠는가. 미안하지만 나는 뱃속이 정상이 아니다. 설사가 잦고 먹은 것을 잘 토해낸다. 오늘 이렇게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것만도 고마울 뿐이다.
결국 서정재를 지나 칠불봉에 섰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던 옛말이 바람에 날렸다. 바람은 늘 정상에 머물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미국 유타주에서 왔다던 젊은 친구가 구슬땀을 흘리며 다가왔다. 미소가 싱그러운 것이 좋은 인상이다. 오늘은 산에 사람이 없던데 이런 반가울 데가 있나. 산에 좀 다닌 눈치였다. 그가 먼저 내게 물었다. 너의 favorte는 뭐냐고? 월출산이라고 서슴없이 말해줬다. 눈이 커지면서 그가 외쳤다. 'We are on the same page.' 아, 내가 처음 듣는 표현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바로 알았다. 그것 보고 '통했다'라고 그러는 거야, 혼잣말을 했다. 그는 내려가는 길이었고 나는 0.2km 떨어진 진짜 정상, 상왕봉에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내가 찍어준 사진을 오랫동안 볼 것이다. 저만치 가서 소리쳤다. I forgot to ask your name, 그가 소리쳤다. Tomy. 그가 또 소리쳤다. What's your name? Joshua. 오래전 내가 좋아했던 친구 이름을 대신 댔다. 그 친구는 지금쯤 무엇이 됐을까.
가야산 우두봉, 상왕봉이라고도 부르는 거기는 해발 1430m. 그래서였구나. 우두봉 정상석 아랫부분에 합천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인상에 남는 바위산들이 많다. 가야산도 그중에 하나로 남을 것이다. 유달리 힘들었던 것도 잊지 않고 끼워놓을 것이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여름을 지나고 오른 산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교육 현장에서 많이 상처 입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 가고 아내는 갑자기 췌장 사진을 다 찍었다. 먹고사는 일이 아니면 금방이라도 이 방에서 나가버리고 싶은 순간이 나에게도 있다. 그러면서 아침이면 일기를 쓰고 다시 덮는다. 그때는 덮었는데 채 덮지 못한 것들을 가야산에서 덮었다.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 것들은 이렇게 덮는다. 그게 산이 가진 영험함 아닐까. 거기서 밤까지 머물러도 좋을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고요한 것인지 달이며 별이 쏟아지기라도 한다면 분명 여기가 거기겠다. 심원사와 해인사에서 울린 종소리가 가야산 고개를 타고 올라 상왕봉에서 득도할 것만 같았다.
사그라지는 볕을 손으로 재가면서 산을 내려왔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동동 사람을 띄웠다. 내가 제대로 산에 올랐던 탓인지 생각지도 못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 불러본 것이 언제였던가. 추석이라 그랬던가...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이번에는 스승의 은혜와 섞지 않았다. 이제 무릎이 영 불편하다. 산을 내려오는 것이 무슨 고행하는 듯하다. 많이 걸었구나. 닳도록, 나는 무엇을 닳도록 위했던가.
주차장에 내려와 올려다본 하늘에 추석 달이 동그랗게 떴다. 멀리 인도네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러면서 망설임도 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 친구 말이다. 사진을 찍고 담배는 휴지통에 다 버렸다. 방금 보낸 사진 아래 하트가 하나 달렸다.
*상아덤 ㅡ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물상 능선과 이어져 있어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