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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9코스

우리가 함께 걸으면서 나눈

by 강물처럼


10월, 말만 들어도 고마운 생각이 드는 달. 지나간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알은체 하는 것이 정겨우면서도 어쩐지 서러운 것 같아서 쉽게 표정 짓지 못하고 오래 멀리 주억거리는 시간. 그 10월이다.

그야말로 추석 연휴는 황금연휴다. 마땅하게 쉴 데가 없고 쉴 만한 때도 없는 사람들에게 6일이나 되는 연휴는 얼마나 큰 쉼표가 되었을까. 악보를 따라가다 쉼표를 만나면 악기도 숨을 고른다. 갈매기처럼 4분 쉼표가 하늘을 난다. 작은 가방을 둘러멘 강이는 8분 쉼표처럼 길 위에 섰다. 마치 가고 오는 길 양쪽을 팔 벌려 가리키는 둘레길 안내 표지처럼 담백한 차림이다. 길이 어깨를 내어주는 곳에서 쉬기로 한다. 세상은 누가 짓는 음악이었던가, 10월 첫날, 높고 파란 하늘이 물에 비쳤다. 덕천강이 기다랗게 흐르는 곳에 징검다리가 보였다. 물가에 없던 다리가 놓였구나,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다리까지 가서 이쪽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오늘 우리는 수지맞았다! 징검다리는 정겨우니까 여기로 가자. 얘들아, 돌다리를 건너서 가자. 비가 내린 뒤라서, 구름이 걷힌 다음이어서 투명하게 비치는 것들이 사방에 가득한 날이다. 물이었으면, 손으로 흐르는 물을 거슬러 본다. 힘이 좋고 부드럽다. 그리고 깨끗하다. 몸을 뒤로 젖혔다가 폴짝 한 칸씩 뛰어넘는 강이가 놀라면서 웃으면서 또 놀라면서 웃는다. 언제 이렇게 실감 나게 뛰어봤겠나. 물살이 찰방찰방, 가을빛이 그 물살 위로 살갑게 내린다. 둘레길에서 시작했던 시작 중에 가장 산뜻한 시작 아니었을까.

루소는 고백록을 집필하면서 그에게 도보여행은 끝없는 행복의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에 느꼈던 인상들을 기록해두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한다고 적고 있다. '내가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된 삶의 소소한 일들 중에서 내가 가장 아쉽게 느끼는 것은 여행일기를 적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141p.

어디였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책을 뒤적거리며 찾았다. 돌다리를 건너는 순간 나를 관통하듯 지났던 말은 저 문장이었다. 문장 두 개가 내 주머니에는 남아있다. 하나씩 건네면서 덕산에서 위태까지 걸었던 도보 여행을 그려볼까 한다. 덕천강을 건너면서 배를 얻어 탄 것도 아니지만 사공에게 뱃삯을 내기로 한다. 우리의 사공은 그대가 맞다. 그대에게 걷기 예찬에서 얻은 문장을 그대로 건넨다.

사실 나는 9코스를 이전에도 걸었었다. 겨울이었고 친구 한 명이 동행하였다. 우리는 그날 실컷 길을 헤매게 된다. 정말이지, 그렇게 헤맬 수가 있을까 싶을 - 어이가 없을 만치 - 정도였다. 징검다리도 없이 장터를 지나 다리를 건너 이 앞으로 걸어왔고 길가에 눈이며 물이 녹으면서 얼고 있었다. 비록 다 걷지 못하고 오르던 길로 도로 내려왔던 길이지만 인연이 있던 곳이란 가슴 한편에 옳게 자리 잡고서 때가 되면 생각난다. 저녁 어스름이 깃드는 산골의 정서 같은 것이 되어 사람을 그립게 하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친구야, 거기 아직 기억한다고 했지? 감나무가 유난히 많던 동네, 그 마을 이름이 유정 마을이었더라. 우리가 씩씩하게 밟고 올랐던 눈밭, 그 언덕바지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가시만 남은 풀숲에서 서성거렸던 겨울은 몇 해 전이었나? 이번에도 나는 그 길로 몇 걸음 들어서고 말았다. 이렇게 무심히 잃고 마는 길들이 우리에게는 있다. 허탈하게 웃으면서 또 그러네, 이번에는 아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길을 바로잡았다. 사람은 서로 돕는다는 말이 길에서는 여실히 드러난다. 혼자 가는 길이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어둡고 쓸쓸한 길에서는 더욱 사람이 그리운 법이다. 그리워하는 그것은 힘이다. 무언가를 힘껏 그리워하는 것이 그 사람이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 아닐까. 길에서는 그리운 것들이 떠오른다. 여보게, 걸음을 돌려 그 팻말을 찾았네. 그때도 그런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이 팻말은 길가에 더 나와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러니까 여기부터는 고개로 이어지는 길이다. '중태재'를 오르는 길은 사뿐한 편이었다. 이 고개를 넘으면 목적지 위태에 도착한다. 짧게 느껴지는 9.7km다.

'나는 노랗게 바랜 여행수첩을 뒤적여본다.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 죽어 없어진 것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제 이렇게 그 모든 것이 깨어나서 반쯤 지워진 해묵은 페이지들로부터 솟아올라 다시 수도원이 되고 수도사가 되고 그림들과 바다가 되다니! 그리하여 나의 친구도 그때의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꽃다운 청춘의 모습 그대로, 독수리 같은 푸른 눈으로 시가 가득한 가슴으로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땅속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래코에게 보내는 편지, 걷기 예찬 142p.

자유를 희망하던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를 흉내라도 내볼까. 그의 삶은 그의 여행이었다. 언젠가 그의 묘지 앞에 서서 나도 따라 읊조리고 싶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Den elpizo tipota,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Den forumai tipota, 나는 자유롭다. Eimai eleftheros.'

시간을 뒤로 돌려 보면 우리의 출발은 정말이지 미약했다. 선택지를 3개 만들어 놓고 출발하는 아침까지 채 결정하지 못했다. 9코스가 있었고, 11코스 하동호에서 삼화실 가는 9.4km 구간이 하나, 12코스 삼화실에서 대축까지 16.7km 구간, 이렇게 3가지 길을 두고 10월 1일, 2일, 1박 2일 동안 어떻게 걸어야 좋을지 고민했다. 한 번 시기를 놓치면 자꾸 뒤로 밀리고 마는 것이 생리인 듯하다. 길도 마찬가지다. 9코스를 두 번 더 걸을 기회가 있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여건이 맞지 않아서 그때마다 뒤로 밀렸다. 이러다가 눈칫밥 먹는 신세가 되고 말 것 같았다. 날씨가 선선했다. 9코스는 도로와 임도가 3분의 2 이상이다. 그늘이 없는 길은 누구나 꺼려 하기 마련이라서 날짜와 날씨를 봐왔던 것이다. 이번 1박 2일의 주목적은 12코스 16.7km였다. 힘들더라도 이겨내고 싶었다. 11코스와 12코스를 연결해서 적당히 중간 지점을 나눌까, 9코스를 이번 기회에 마칠까. 아무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우리 집 아침은 평소처럼 빠르거나 늦게 시작되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비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초등학생일 때는 한두 번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따라나섰는데 점점 커가면서 요구 사항이 많아진다. 미리 계획을 알려야 하고 날짜가 다가오면 상기시키고 그때마다 달래거나 설득하거나 아니면 거래를 한다. 이번에는 여기 가기로 하고 다음에는 너 하고 싶은 대로, 익숙한 표현일 것이다. 그나마 우리 아이들은 잘 따르는 편이라고 위안 아닌 위안을 삼는다. 같이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휴일에 지리산 둘레길 가기로 했다니까 대뜸 불쌍하다고 그런다. 자기들은 절대, 네버, 죽'어'도' 가지 않을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가기 싫은 길을 우리는 또 나선다. 나서기로 했다.

출발하는 아침에도 문제는 있었다. 산이는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몇 번을 깨우러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애들 엄마도 내 눈치를 보더니 놔두고 가자고 서둘렀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데리고 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서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어린 강이가 요령껏 오빠를 챙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대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정이 뒤틀리게 된다. 화음이란 것은 그런 것이지 않던가. 누가 대신 내어줄 수 없는 자기만의 소리가 절대 필요한 공간 아니던가. 나도 아내도 모르는 척했다. 모르는 척, 어떻게 알고 깼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막 출발하려고 했는데 용케도 알고 일어났네, 그러면서 반겼다. 그렇게...

길을 걷자는 것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교육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이 길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각오도 한다. 나는 편협하고 억지스럽고 가부장적인가, 자꾸 묻게 된다. 평소 같으면 하루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는 기분에 고마움도 상쾌함도 그대로 남아서 당장 일기를 쓰고 다녀온 이야기를 써댔는데 지금 쓰는 이 짧은 글이 3일이나 걸렸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역시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일요일에 걸었던 길이 싫거나 나쁘지는 않았다. 밖은 그래서 약이다. 길에서 어땠냐고 누가 내 내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힘들기만 하고 영 귀찮은 일이었는지 알고 싶다. 지리산 둘레길을 다 돌아보는 일이 하나의 소설이라면 지금 여기가 위기와 절정에 들어맞겠다는 생각도 했다. 갈등이 깊어지고 우연이 겹치면서 사건이 되는 그런 구간. 그렇다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여기가 잘 이어져야 작품이 되는 것이다. 중태재로 오르기 직전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다람쥐나 산짐승들이 겨우내 먹고 살 토실토실한 알밤이 산길에 널렸다. 몇 개만 줍자던 것이 비닐봉지에 가득 담겼다. 어떤 것은 알이 크기도 해서 사진도 찍었다. 강이는 밤송이를 까는 것을 처음 봤다. 저도 해보겠다고 덤빈다. 나는 시간이 이렇게 가는 것이 홀가분하니 좋다. 앞으로 내 남은 날들이 더도 말고 이랬으면 싶었다. 길에서는 소박한 것이 특별하고 좋아 보인다. 내가 산이와 강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만드는 재미, 그것들로 이루어진 특별함, 신선함, 선명함. 어쩌면 나는 서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뜻을 알아주기를 재촉하는 것은 아닌가, 늦게서야 이 문장을 마련한다. 아이들은 제 부모가 영영 오래 살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나는 내가 언제든 세상을 떠날 거라고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그래서.... 그랬구나. 아침부터 우리가 엇박자가 났던 것이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 마무리를 지어도 좋을 순간이 왔다는 것을 알겠다. 순연 順延 할 것, 차례가 올 때를 기다려 늦출 줄 알면 얼마나 편할까.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지 3년이 됐다. 서두르려야 서둘 수 없는 일상에서 한 되씩 따로 모아 온 시간이었다. 언제 지리산을 한 바퀴 돌게 될지 아직 모른다. 그것밖에 안 되는 '한 되'지만 그것도 정성인 것을 우리끼리는 잊지 말자. 그렇게 한 가마가 모이면 그것을 어디에 쓸까. 사람들 불러서 잔치를 열까, 어디 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운 나라에 보내기로 할까. 길에서 화해한다. 아내하고 아이들하고 그리고 나 자신하고도 화해한다. 그래도 좋은 것이 좋지 않더냐고 끄덕인다.

내가 인용할 세 번째 문장은 이거다. 걷기 예찬 108 페이지에는 -이렇게 함으로써 보행은 인간의 내면에서 성스러움의 감정을 불러낸다. 햇빛을 받아 뜨거워진 솔방울 냄새를 맡거나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시냇물, 숲 한가운데에서 투명한 물살에 씻기는 자갈밭을 바라보고 오솔길을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는 여우나 울창한 수림 속에서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문득 나타난 불청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슴에게 눈길을 던지는 경이로움. 동방의 전통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장소를 만났을 때 만난 이의 근원에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감 혹은 아우라를 그 사람이나 장소의 다르샤나(Darshana)라고 부른다 - 근사한 말이 있다.

여우도 사슴도 볼 수 없지만, 다르샤나는 아직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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