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허전할까. 허전하다는 감정을 딸아이는 매년 10월 15일이 지날 때마다 한 겹씩 익혀나갈 것이다. 10월은 가을이어서 가볍다. 감나무 이파리가 벌써 저렇게 다 떨어졌다는 말이 어울렸다. 초밥이 먹고 싶다는 강이는 이쪽 한가로운 주택가에 있는 초밥집을 골랐다. 생일이니까, 나도 그런 말에 끄덕거릴 줄 안다. 때로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려서 도착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아니라 나한테 더 필요했던 것이 있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는 기다려야 하니까 5시 반에 나가자, 그러고도 우리는 기다려야 했다. 어떤 동네든 걸어보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낯설어도 위험해도 걷고 나면 알아지는 것들이 밀물처럼 내게 밀려든다. 사람도 그렇게 걸어봤다면 어땠을까. 사람을 걷는 일이 영영 어려운 일일까. 또 서툰 생각이 나를 지났다. 10월에는 바람도 사춘기 소년을 닮았다. 일어섰다 앉았다 사람을 귀찮게 하는 저 마음은 무엇인지, 오래전 나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누구였냐, 그 아이는?
예전에는 그래도 이 동네가 못 사는 데는 아니었을 거야. 우리 아이들은 낯선데 나는 익숙한 집들이 나란히 이어졌다. 저 적벽돌 봐, 이층으로 지은 것이 옛날 스타일이잖아. 전주에 있는 어머니 살던 집하고 똑같잖아. 슬레이트 지붕에 까맣게 때가 끼고 입구와 지붕 사이가 살짝 내려앉은 저 건물은 얼마나 오래 저기 있었을까. 20분을 걸었을까 싶었는데 옛날과 지금이 이 도로를 따라 서로 잇닿아 있었다. 나는 옛날 사람인지, 지금 사람인지 흥미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더 걸어도 좋을 거 같은데 다시 큰 도로가 나오는 데에서 돌아섰다. 강이는 그저 오늘이 생일인 것이 좋을 뿐이다.
저녁을 먹고 - 이 대목을 만나면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흐른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십이 넘은 나는 '허물없이'와 '찾아가' 사이 어디쯤에서 길을 놓은 듯하다. 길을 잃는 것은 자의가 아니어서 긴박하고 두렵다. 길을 잃은 사람은 길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길을 손에서 놓고 발에서 놓고 나에게서 놓기로 한다. 놓지 못해서 도리어 안타까웠던 것들에게 대신 바람 자리를 내어준다. 바람만도 못했던 나였다고, 초조했다고 토로한다. 길을 놓아 보내고서야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이 오든 저녁이 되든 나는 나로 있음에 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열네 살 딸내미 생일에 반 늙은 아빠의 장탄식이라니. 나는 아빠도 아니다. 강이는 초밥을 좋아하게 됐구나. 연어는 사연이 많다. 아니, 이야기라고 하자. 어린 너는 노랗고 하얀 민들레도 보라색의 라벤더도 분홍의 코스모스와 붉은 앵초도 닮아야 하니까. 앞으로 꽃을 피울 것들은 이야기를 담뿍 먹고 자라는 거다. 아빠처럼 멀리 다녀온 사람에게서 떨어지는 구름 조각이나 빛살 같은 것들은 한 단으로 묶어서 사연이라고 하고.
그래, 연어가 고소하니 기름졌더라. 너는 이번에는 골고루 먹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거구나. 연어만 연어만 먹던 아이가 등 푸른 생선까지 집어 드는 것을 보고 눈치챘다. 어떤 것은 아직도 맛없는 맛이 입안에 남아있다고 그러던 그것이 아마 삼치였을 것이다. 나는 초밥을 먹을 때면 일본에서 먹었던 자완 무시*가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계란찜이라고 대충 부르는데 내가 먹었던 자완무시는 하나의 존중이었다. 찻잔같이 아기자기한 그릇 덮개를 열면 따뜻한 김이 어리면서 이방인에게도 안방을 내어주는 어떤 친절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작은 스푼으로 뜨는 맑고 연한 계란의 속살에 알알이 박힌 은행이며 표고버섯, 작은 새우, 카마보코*가 내는 미감 味感은 식사를 멋스럽게 꾸며줬었다. 여유가 없던 유학생에게 종종 밥을 사주던 치바 상은 건강하실까. 고향 홋카이도를 자랑스러워하며 싱긋이 웃던 모습이 아련하다.
저녁을 먹고 허물없이 거리를 걸었다. 넷이서 지리산을 걷고 있는 우리는 이 도시에서 또 이렇게 만났다. 배가 부르다며 한 바퀴 돌고 들어가자는 말이 일 년 중 가장 정감 있게 들렸던 어젯밤이다. 바람은 직선으로 서늘해지고 있다. 삭풍이라는 말은 한 달쯤 지나서 써먹기로 하고 잎새가 떨어진다고 후렴처럼 읊조렸다. 아무래도 10월은 저 나뭇가지에 눈이 간다. 몇 개 남았나. 어느 만큼 단풍이 들어 사람을 놀래려나. 매번 마주치는 가을색이지만 사람을 늘 설레게 하는 저 모양이며 빛깔이라니, 살아있는 것은 좋겠다. 그래도 낙엽의 묘미는 모를 것이다. 그 단 한 번의 곡예비행은 꿈처럼 아껴두기로. 가지에 매달린 잎들이 살랑거린다. 저 꼭대기에 있는 것은 팔랑거리고... 나는 노래를 틀었다. 휴대폰을 높이 들고 더 많은 살아있는 것들이 한가을밤의 꿈도 들어보기를 바랐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茶碗蒸し、ちゃわんむし ㅡ 곱게 푼 달걀에 담백한 육수를 넣고 찜통에 찐 요리
*蒲鉾、かまぼこ ㅡ 흰 살 생선을 잘게 갈아 밀가루를 넣어 뭉친 일본식 어묵
<네이버에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