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여기에 우리 머물며 / 이기철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마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느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새를 들 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삶이 너라면 너는 어디쯤에서 완성되는가
사랑을 알아보고 그 사랑을 한껏 다 입어봤거나
네 속에서 울고 있었던 목소리에 눈이 뜨였던 아침이었는지
그때 너는 어떤 순간을 지나 어느 순간에 다다랐던가
생명을 맺고 그 생명이 고동鼓動을 세상에 내어 놓던 날에
너는 떳떳했을까 외로웠을까 울고 싶었을까
그것은 가을 날을 담고 걸어가는 스님 발자국
도갑사를 지나 바위산에 성큼 오르는 억새 한 줄기
삶이 1이라면 너는 어디쯤에서 살고 있는지
1도 모른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세상에서
부지런히 쉬지 않고 1이 되려는 너와 같은 사람들
그것은 떨어지는 것들 위에 놓여있는 바람 한 줄기
바스락 거리면서 들려오는 너의 초상肖像은
서리 내린 고추밭에다 묻어놓고서
삶이 너라면 너는,
어디쯤에서 불을 밝히고 가던 길 마저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