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정원 박람회가 폐막을 하고 내년 준비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어제 일요일까지 무료 개방을 한다고 들었다. 천만 명 넘게 방문했다는 거기를 11월 나들이 삼아 다녀올 생각이었다. 오후에 몇 시간 잠시, 돌아오는 길에는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도 들러 저녁을 먹을까 했었다. 하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이도 친구하고 공부할 것이 있다고 집에 남았다. 강이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어서 계획을 취소했다. 강이도 집에서 쉬기로 하고 아내와 둘이서 어디든 다녀오자고 출발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기 전에 아내 친구, 영민 씨가 합류했다. 운암 옥정호를 향해서 달리다 금산사 쪽으로 빠져나왔다. 거기 구성이 좋은 찻집에 들러 쌍화차를 마셨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전환, 하루 동안에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하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을 갖고 셋이서 우중한담을 나눴다. 감나무가 예쁘네, 찻집 주인이 안목이 있네, 옛날 미싱으로 이렇게 만든 거 봐, 그러면서 느긋해졌다. 빗줄기가 굵어지긴 했지만 거세진 않았다.
어떤 이야기 중에 한옥 마을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거기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거리도 한가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남천교 -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데 -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한옥 마을을 걸었다. 규모도 커졌고 가게 구성도 다채로워졌다. 저녁 시간은 아니었지만 베테랑 칼국수를 빼먹을 수가 없어서 들렀다. 셋이서 두 그릇을 시켜 먹고 만두도 한 접시 시켰다. 옛날 맛이 났다. 돈 버는 집이 맞다.
어둑해지려는 거리로 나와서 족욕이란 말에 끌렸다. 많이 비싸 보이지도 않고 멀리 한옥마을을 전망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무엇보다 피로를 풀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신선한 경험이 되겠다 싶었다. 조용해지고 나른해지고 편안해졌다. 어둠에 잠기는 기와지붕들을 보면서 수채화 그림도 생각났고 여기를 6년이나 지나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도 저절로 떠올랐다. 옛날 기억은 대부분 아쉬운 색감이 떠돈다. 그 쓸쓸함을 남의 것처럼 바라보고 싶다. 속살이 아니라 껍질을, 전부가 아니라 부분만 만지작거리고 싶다. 나룻배를 강물이 잡지 않는 것처럼.
두 사람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내 이야기를 풍경 속에 하나씩 던지면서 30분을 보냈다. 홍콩 영화처럼 밖에는 비가 내렸다. 우산을 나눠 쓰고 젊은 연인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그 한마디가 따뜻하고 가을 같고 아니면 추억이나 인생 같았다. 여기서 차 있는 데까지 걸으면 15분, 학교 다닐 때는 꼭 그 15분이 귀찮았다. 걸어가는 데, 씻는 데, 준비하는 데, 무엇을 하든 쓸데없이 드는 15분이 따분했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치명자산을 바라보며 전주천을 따라 걷는 이 15분이 영영 다시 못 볼 시간이라는 것을. 장난이래도 이런 식이면 설렌다며 내가 그랬다. 늘 처음이야. 시간이 속삭이는 말은 언제나 그래. 내가 오늘 처음이야, 지나가는 것들은 그렇게 처음만 있나 봐.
어제 연인*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더만,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이쯤에서, 다리 가운데 서서 가을바람을 머리카락 사이로 흠뻑 맞으면서 하늘에 달이 있다고 하고, 저 물에 그 빛이 비치는 거지, 저 산 그림자가 여기까지 내려와서 옆에 설 때, 그러는 거야.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웃었던가, 담담했던가, 착했던가. 저기 부채 박물관이 당구장이었어요. 내가 철원이를 찾아서 처음 들어가 본 당구장, 학사 당구장이었어, 이름도 생생하네. 저 모퉁이로 나나 목욕탕이랑 여관이 있었고, 왼쪽으로 가면 만화방, 핫도그 팔던 집, 그리고 내가 다녔던 성당이 나오고...
일기가 또 길어졌다. 그렇게 돌아왔다. 시절을 거기 두고 돌아왔다. 그 시절은 거기에서 기억처럼 살 것이다. 가을,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