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기 전에, 그보다 몇 개월 빨랐을 것이다. 동산동에 공부방을 마련하면서 이 노트북을 장만했을 것이다. 그래야 순서가 맞다. 공부방 시작해서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암 진단을 받고 그 뒤로 병원에 다녔으니까. 마흔여섯, 자꾸 수술받은 날짜를 잊어먹는다. 올해 쉰셋, 대충 잡아도 8년 가까이 이 노트북을 썼다. 오로지 글을 썼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이마트 직원이 웃었다. 휴대폰도 노트북도 너무 심했다는 투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겨우 견디는 모습이었다. 이게 정말 웃기는 거라는 것을 어제 아침 통화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아, 네. 그러면서 나를 확인하는 대답과 동시에 얇게 들려오는 웃음. 나 = 지나치게 오래 쓴 휴대폰과 노트북 = 웃김, 이런 식이다.
어제 아침에 노트북을 찾으러 갔다. 새 노트북이 생겼다. 이제 이 노트북으로 무엇인가를 쓰는 일은 더 없을 것이다. 이 일기가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 분명하게 해두고 싶다. 이 노트북으로 나는 비로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이 노트북을 갖고 다니면서 병원에서도 썼고 새벽에도 썼고 지리산 아래에서도 썼고 사방팔방 곳곳에서 낮이건 밤이건 썼다. 글만 썼다. 그만하면 장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노트북은 장인이다. 그렇게 낡았다. 사람이 늙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이 노트북도 가만히 멈춰 있을 때가 많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곤 한다. 더 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나도 그 옆에 주저앉는다. 고생했다. 막걸리라도 받아주련만....
약속이 있어서 곧 일어나야 한다. 돼먹지 못한 나다. 고마운 것이 그렇게 많은데 겨우 이 한 시간도 제대로 침묵하지 못하는구나. 아쉬워서 어쩌냐. 내가 많이 고마웠다. 네 생각 많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