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는 걱정이 되는지 엄마한테 '우리 집 어떻게 하냐'라고 물었단다. 수업받는 학생들이 연이어 그만뒀다. 다들 오래 다닌 학생들이라 때가 된 셈이다. 그만두는 학생이 있으면 새로 들어오는 학생도 있어야 공부방이 회전을 이루면서 안정적일 텐데 사실 멈춘 상태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곳에 고적감이 흐른다. 나는 그것을 '때'로 해석한다. 물이 들어올 때, 물이 나갈 때,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인터넷에는 얼마나 좋은 선생님들이 많은가. 교육방송부터 초대형 입시 학원이 운영하는 사이트들은 또 얼마나 훌륭한가. 스카이 출신들로 구성된 인터넷 과외는 날마다 할인 경쟁을 한다. 공부하려는 학생이나 공부가 되는 학생들은 학원에 찾아가서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고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씨름한다. 내가 경험하는 일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나 길을 잃은 아이, 심지어 하기 싫은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일일이 챙기는 모습이다. 그러니 실력은커녕 좋아지는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 아이가 썩어가는구나, 싶을 때 자괴감이 든다. 나는 저 몸부림을 견뎌내는 것이다. 아이는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꿈틀거리느라 시간을 보내고 그 순간 '얼마'라는 색을 입힌 숨을 깊게 호흡한다. '얼마'가 나를 진정시키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아이가 아이여서 그렇지, 머리가 조금만 크면 당장 무기 하나를 만들어 놓고 나에게 맞설 것이다. '끊을 거야' 아이들의 무기는 네 글자다. 인정하는 일이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쉬우면서 불편하다. 학생들은 결국 끊는다. 공부방을 끊고 나를 끊고 날아간다. 그래서 산이에게 해줄 말이 별로 없다. 여기가 감옥은 아니잖아. 그래서는 안 되잖아. 감옥이나 사람들이 끊고 나가는 것을 걱정하지, 여기는 공부하고 수업하던 곳이잖아.
오빠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강이만 남으면 물어본다. 카톡으로 보내 준 것은 어땠냐고?
저번 글은 내가 모르는 말이 많아서 어려웠는데 오늘 것은 쉬운 말들로 이해가 잘 됐어, 나는 더 듣고 싶어서 어디가 괜찮았냐고 묻는다. 내가 알아듣기 쉽게 예를 들어달라고 그랬다. 강이는 핫케이크라고 그랬다. 그게 뭐냐고 서로 확인하면서 나는 팬케이크로만 알았었는데 덕분에 새로 알게 됐다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마치 핫케이크 여러 장을 쌓아 놓은 아침 테이블 같은 글이었다고 그런다. 순천 정원 박람회, 한옥마을, 드라마 '연인', 이야기들이 따로 또 같이 잘 준비된 거 같아서 따뜻해 보여, 중학교 1학년이 나보고 따뜻해 보여 그러는 것이다. 너는 따뜻한 것이 보이냐? 그것은 멋진 공감각이구나.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은 이런 감각이다. 현상이나 현실이 반영하는 물빛이며 하늘빛은 끝없이 다채롭다. 나는 애써 내 감각으로 그 무딘 감각으로 기껏 하나로 하나만 뽑아내고 있다. 단풍이 어디 한 가지 색으로 말하던가. 천 년 바위는 벌써 질식해서 숨졌을 것이다. 자기식대로 감각한다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냐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얼토당토않을 짓이다며 외면한다. 세월을 살려는 자는 조화로워야 한다. 조화는 내가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전부가 죽고 전부가 사는 일이다. 설악의 단풍, 공룡능선에 쏟아지던 수백 가지의 노란색과 그만큼 다정했던 붉은빛, 그 사이사이에 검은 가지들, 하늘이 장대처럼 높았던 날 물빛은 多情 했다. 좋은 것들이 일제히 웃으며 주름이 실컷 졌던 날, 살아야 할 날은 그런 날이다. 바위에서 웃음소리를 듣는다. 따뜻한 것을 본다면, 그래 산다면 천지가 웃음소리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