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속삭이는 말

오래 쓰는 육아 일기

by 강물처럼


어제저녁에는 비와 바람이 몰아쳤다. 옛날이야기에 나올 법한 천둥소리와 번개가 이어졌다. 11월은 가만있어도 쓸쓸한데 날씨까지 고함을 치고 난동을 부리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눈 감고 귀 닫고 잠을 잤다. 내 잠은 인공지능, 인공눈물, 인공수정, 인공관절, 그렇게 이름 붙이는 것이 어떨까 싶은 잠이다. 까맣게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어둠, 어둠이라고 부를 입자가 없는 '없음' 상태다. 플러그 아웃, 플러그인 되면 켜지는 밝음이 나다.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10도 더 낮은 기온이다. 3학년이나 됐을 것 같은 여자아이가 도로를 건너고 있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주머니에서 손이나 빼고 걸었으면 싶은데 도로를 다 건널 때까지 잔뜩 움츠린 자세다. 금방 날이 추워지겠구나.


강이 혼자 차에 남았을 때 요전 날 외웠던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부탁했다.


진달래꽃 - 김사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김소월이란 이름을 틀리다니, 실수인지 진심인지 분간이 서지 않아서 기다렸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으세요.


웃었다. 그리고 따졌다. '즈려 밟으세요?' 뭐, '김사월?'

아, 아닌가? 저도 다시 확인하고 웃는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끝을 머뭇거린다. 흘리..... '겠습니다'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왠지 어색한 것이다.

흘리...

'흘리우리다' 내가 끝냈다.


시 하나를 아는 게 쉽지 않다. 시 하나를 알면 아마 다른 시 백 개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을 따라가는 일은 성가시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고.... 쓸데없는 일 같아서 날마다 그만둘까 싶어진다. 사뿐히 즈려 밝고 가시옵소서. 그 말을 단 한 번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일러줬다. 어디 가서 그 말을 배울 수 있겠냐며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읊조렸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꼭, 11월이 나에게 전하는 말 같았다. 오늘 하늘은 눈이 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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