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생활 - 인천 인쇄소에서 (2)

아픔보다 큰 서러움

by 나루

1962년, 인천의 한 인쇄소. 평소처럼 일하던 어느 날, 청년은 재단기에 손을 베였다.

1962년 6월 6일

인쇄소에서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주인집에 가서 로-라를 끌여서 만들고 회사에 와 보니 오후 6시였다. 같이 있던 애는 벌써 집에 들어갔었다. 나는 앞에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하려고 종이를 자르다 재단기에 그만 손을 배였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노끈으로 두 손을 묶으고 황외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때 마침 OOO이라는 학생이 치료비를 1500 환인데 우선 천환을 지불했다. 정말 고마운 학생이다. 치료는 한 손에 두 군데씩 꿰어 매곤 했다.

밤에는 누나와 같이 극장 구경했다. (잊을 수 없는 애정)

자취할 때 가장 서러운 순간은 ‘아플 때’라고 한다. 누구에게 내색하기도 어렵고, 혼자 끙끙 앓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알아봐 주고 신경 써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마음이 조금 낫다. 그는 손을 다쳤지만, 치료비를 대신 내준 학생 덕분에 서러움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밤에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것 같다.



1962년 6월 7일

손은 아프고 몸이 괴로워서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데 같이 있던 애가 비를 맞아가며 나를 찾으러 왔다.
주인아주머니가 어제 나 있는 집은 모르니까 같이 있던 애 집을 찾아와서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치료라도 받아야지”하고 말씀해서 나한테 찾아왔다고 해서 아침도 먹지도 않고 회사에 나갔다. 나가서 오전 내에 거기 가 있어도 말 한마디 없이 주인아저씨가 조심하지 왜 다쳤냐고 꾸중만 한다.

나는 꾹 참다 못 참아 집에 와서 밥을 먹고 1시부터 6시까지 잠을 잤다. 잠을 자고 나서 또다시 회사에 나갔다. 가다가 정희를 만났다. 정희는 집에 오는 중이었다. 그 애한테 자세한 말을 다 듣고 회사에 갔다.

들어가니까 1000 환을 OOO학생 주었다 하면서 또 천환을 나를 준다. 1000 환을 받아가지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돈은 어제 미납된 500 환과 오늘 치료비 700 환 합쳐서 1200 환 내야 하는데
나한테 천환이 있어도 어제 미납된 500 환만 주고 내일 지불하겠다고 하고 주인아저씨한테 그렇게 말하고 집에 돌아왔다.

석양에는 금자 아버님이 오셔서 나의 손을 보시고 가시었다.


요즘에는 결제는 뭐든지 딱딱 맞게 하고, 현금보다 카드를 훨씬 많이 쓰고 있다. 하지만 일기 속 시절에는 미납되어도 “내일 드릴게요.”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마도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짐작하고 믿는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 되어버려서 그 시절의 정이 그립다.


한편으론 '1000 환이 있어도 미납되었던 500 환만 내는' 청년의 소심한 복수가 보였다. 다친 것도 서러운데 꾸중까지 들었으니...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1962년 6월 8일

회사에서 하루 종일 치료도 받지 아니하고 손이 아파도 참아가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에도 11시 30분까지 일했다.

소년은 다쳐도 열심히 일을 했다. 짧은 한 문장에 하루의 고단함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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