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회
지금까지 나는 이 일기장의 주인을 나의 할아버지, 그 시절의 소년, 청년 등으로 다양하게 불러왔다. 하지만 그를 '할아버지'라는 나와의 관계 안에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칭할 때 이름을 그대로 쓰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손녀가 할아버지 성함을 친구처럼 부르기는 왠지 죄송스럽다. 오래 고민한 끝에, 이름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S'로 부르기로 했다.
S는 인쇄소를 다니면서도 저녁에 주산 공부를 하고싶었다. 그런데, 배움은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다.
1962년 6월 12일
일을 하고 나서 학교에 갈 목적으로 주판을 가지고 회사에 나갔다. 일을 다 하고 나서 오후 6시에 주산학교 갈려고 옷을 입으니까 주인이 말하길 학교에 갈려면 인쇄소에 다니지 말고 인쇄소에 나올려면 학교에를 다니지 말라고 하시어서 어떻게 그냥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같이 있는 애 그놈은 주인아저씨 말을 듣고 집에 가서 타읍해 봐서 내일 결정짓겠다고.
일기를 읽고 나는 정말 답답했다. 요즘처럼 '근무시간 외 간섭 금지'가 당연한 시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S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당함을 견디고 난 후에야, 지금의 워라벨(work-life-balance) 문화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주인아저씨에게 묻고 싶다.
“일 끝나고 학교 가는 게 왜 안되는데요?”
그 시절엔 용납되지 않았던 걸까. 2000년대생인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필수교육은 의무화 되어있고, 온갖 학원뿐만 아니라 무료 인터넷 강의도 넘쳐난다. 그래서 계속 배우고자 하면 배울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듣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런 의지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겐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비하면 내가 훨씬 쉽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하지 않아도 학교를 끝까지 다니고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안다.
1962년 6월 13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으니까 공장에 같이 있던 애가 나를 찾으러 와서 아침도 먹지도 아니하고 공장에 나가서 못 다니겠다고 말할려고 둘이서 갔다. 가보니 충청도 사람들은 신체검사 하러 가버리고 주인아주머니 혼자 공장에 계셨다. 정희와 나는 잠자고 있다가 주인아주머니가 집에 들어가고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우리가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화를 내며 일하지 않으냐고 해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너 학교 다니겠냐 공장을 나오겠느냐고 해서 우리는 학교를 다니겠다고 했다.
주인 말은 그럼 오늘 일하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서 한참 동안 일하다가 아침도 안 먹었다고 밥 먹고 나오겠다고 하니까 필요 없다고 나오지 말라고 화를 내신다. (한 달 만에)
옷을 싸가지고 그냥 집에 와서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문제이니라
아침을 먹고 목포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목포 아저씨는 한 달 전에 내가 캐키 장사를 하면서 만난 아저씨다. 그 집에를 찾아가서 보니 병환에 누어계시면서 왜 인제 오냐고 하신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고향에 아버지가 병환에 누워 계시어서 고향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그랬냐고 하시면서 참 안 됐다고 하시면서 한 달 전에 말한 직조공장에를 나를 넣어줄려고 했는데 그 뒤로 사람들을 넣어주었다 하며 이제는 사람이 다 차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다른 참고될만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주판을 가지고 처음 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저녁에 불이 나갈 때까지 주판을 연습
주판 800 환짜리를 1000 환 짜리로 바꾸었다.
S는 결국 인쇄소를 그만 두고 주판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인쇄소 일자리를 한 달 만에 잃게 되었고, 직조공장에도 자리가 없다고 하니 막막했을 것이다. 그런데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배움의 열정은 피어올랐다. 그날 저녁에 불이 나갈 때까지 주판을 연습했다는 기록이 그 의지를 증명해 준다.
나였다면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판 학교를 다니겠다는 마음을 굽히지 않은 S의 선택이, 참 대견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나는 나의 할아버지로만 S를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치열하게 성장하려 했던 한 청년, 어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으로 기억하겠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모습을 본받아 내 자리에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