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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Jul 31. 2024

13. 가위의 정체

모바일로 남편이 이미 발권을 해 놓은 상태지만 종이로 된 항공권을 굳이 따로 받았다. 왠지 이게 있어야 진짜 여행 가는 기분이 든다. 수하물도 문제없이 보내고 가장 떨리는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설명문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가방과 손에 든 것, 겉옷을 벗어 상자에 넣고 몸 검사도 마치고 짐을 찾으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가방 주인 누구세요?"


내 배낭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검사에 걸릴 만한 물건을 담지 않았기에 무슨 문제가 있냐며 공항직원에게 다가갔다.


"혹시 가방에 가위 같은 거 넣으셨어요?"


엑스레이를 보여주는데 정말 기다란 가위모양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다시 한번 엑스레이에 통과시켜 보았는데 전과 차이가 없자 가방을 열어서 확인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 상황에서 '아니요'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괜찮다는 대답에 직원은 가방을 탈탈 털었다. 내용물은 물론이고 가방 내부에 이물질이 있나 가방을 구겨도 보았지만 문제가 될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직원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한번 샅샅이 뒤져보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서 이미 검색대를 통과한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보안검색에서 이미 진이 빠졌다. 출국심사는 뭐 그냥 여권 주고 얼굴 한 번 보여주니 끝났다. 혹시나 동일한 일을 호주에서 또 겪을까 봐 가방을 다시 정리했다. 아무리 해도 가위로 보일만한 물건이 없는데 도대체 엑스레이에 보인 그 가위모양의 정체는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


무사히 진입한 면세구역은 보안구역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반짝이는 조명과 물건들 사이로 직원의 '할인행사 중입니다'라는 말에 홀리듯 선글라스 매장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를 사면 추가 할인을 더 해준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선글라스가 멋이 아니고 필수품이라는데 출국 전 할인까지 해준다니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아무렴, 여행의 시작은 쇼핑이지!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갑자기 1번과 2번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따라간 곳은 크고 작은 피겨와 포토존이 이었다. 안쪽에는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요즘 두 녀석이 푹 빠져있는 게임인 롤(League OF Legends)의 체험관인 '라이엇 아케이드'였다. 해당 공간에서 게임을 직접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안 두 녀석은 공항에 더 일찍 올걸 그랬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체험관을 구경하는 동안 수많은 명품 매장의 간판을 읽어보면서 면세구역을 걸었다. 필수품 외 쇼핑을 즐기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는 큰 의미도 재미도 없었다. 게다가 들어서자마자 필요했던 선글라스를 구매한 상황에서 더 이상 쇼핑을 할 원동력도 사라졌다. 비행 중에 먹을 간식거리를 추가로 구입하는 것으로 쇼핑을 끝냈다.


탑승게이트가 100번이 넘어가면 셔틀트레인을 타고 탑승동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탑승동은 처음이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이동했다. 셔틀을 타는 곳에는 이동 후에는 돌아올 수 없으니 꼭 확인하고 타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는데 괜히 무서웠다. 몇 번이고 확인했던 표를 셔틀 타기 전에 또 살펴보았다.

탑승동에 도착할 때까지도 연착소식은 없으니 다행이었다. 타고 갈 비행기를 보니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비행기 연결통로로 진입하니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앞장서고 아이들이 순서대로 걸어갔다. 나는 천천히 마지막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아니 비행기에 탄 모두가 기분 좋은 흥분상태인 것 같았다. 안전벨트로 붕붕 날아가려는 마음을 단단히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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