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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Dec 04. 2019

'얼'굴의 색

당신의 얼굴색은 하나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 웃는 얼굴, 행복한 얼굴, 기쁜 얼굴, 우는 얼굴, 힘든 얼굴, 화난 얼굴, 짜증 난 얼굴, 슬픈 얼굴. 아주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에서도 밝은 이면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꾸밈으로 가득한, 일종의 자기 합리화 성향이 강한 그런 모습들 말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얼굴을 보는 수많은 제3자들이 밝은 얼굴만 요구하기 때문에 우린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익숙한 것으로 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용기'자체 또한 쉽게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지금껏 보였던 얼굴 이 외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을 하고 나타나면, 놀라거나, 도망치거나, 외면하거나 하는 다양한 결과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결말보단 나쁜 결말을 더 자주 맞이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다른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숨기고 살아가는 거다. 거절과 외면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하나의 얼굴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산다. 행복한 척, 괜찮은 척, 입에 경련이 나도록 웃으며 그렇게 산다.


적당한 이미지, 적당한 대화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관계 하나쯤 가지고 있는거야', '사는게 다 그런거 아니겠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쩌면 우리 삶에는 이런 관계들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럴수록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 혹여나 떠나거나, 멀어지지는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진짜 '나'에게는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보고 싶은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한다. 때로는 이런 관계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모두는 어떤 '이미지' 속에 갇혀 살고, 그런 웃음들 속에는 피상적이고 이상한 관계들이 연속을 이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관계들이고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누구나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어느 하나를 강요할 수 없듯이, 관계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의 감정을 강요한다고 하여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강요받는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우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간다. 타인에게 너무 매몰되지 않기 위해, 마음에 여백을 준다. 그 여백이 사라지는 순간, 한 가지의 얼굴색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얼굴은 ‘얼(혼)’이 담긴 곳이라는데, 우린 매 순간 얼이 빠진 상태로 산다. 빠진지도 모른 채, 영혼 없이 산다.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울고 있어도 모른다. 화가 나도 모른다. 병이 들어가는 걸 알지 못한다. 무너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여러 개의 얼굴을 회색으로 덧칠한다. 그만, 이제 그만 해도 될 때가 되었다.


부디 마음의 공간과 공간 사이가 어둡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의 빛깔과 솔직함으로 물들길 바란다

우리의 삶은 다채롭고, 아름다우니...


  당신의 얼굴색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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