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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Dec 19. 2019

꿈이 없어지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것

요즘 들어 꿈을 자주 꿉니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꿈의 잔상이 안개 낀것 마냥 흐릿하고, 잠에서 깨고 나면 굉장히 찝찝하다는 겁니다. 소위 말해 악몽이라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개운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한 것들이 꿈으로 드러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이 맞다면 요즘 불안한 저의 심리상태가 꿈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이상하게 지난밤의 꿈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났습니다. 다름 아닌 꿈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도 연락 한 번 한적 없는 아주 생소한 인물로부터 말이죠. 그 내용은 더더욱 생소했습니다.


“예은씨는 꿈이 뭐예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받은 연락에 저는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이런 연락은 왜 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한참을 그 문장을 되뇌었습니다. 저는 꿈이 뭘까요. 자면서 꾸는 그런 꿈 말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그런 질문 속에 담긴 ‘꿈’ 말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오랜 시간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습니다.


“꿈이 없어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꿈이에요. 재미있게 사는게 꿈이에요.”


자꾸 꿈꿈 거리니까 어감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단어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니 괜히 쑥스럽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과학자, 대통령, 선생님, 배우 심지어는 구름, 바다, 빵집, 공주 등. 우리의 꿈에는 경계가 없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죠. 언제부터인가 우린 꿈을 잃고 삽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일상에 익숙해지고 꿈꾸지 않는 삶에 무뎌집니다. 분명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꿈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요. 꼭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데, 내일을 위한 아주 사소한 꿈을 꾸며 오늘을 살아갈 수도 있고, 내일이 되었을 때 그 꿈을 이룬다면, 우린 매일을 기대와 설렘으로 살 텐데 말이죠. 꿈을 꾸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힘이 드나 봅니다. 어쩌면 무서운 걸지도 모릅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겁을 먹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꿈을 꾸지 않기를 선택합니다. 사실 없는게 조금 더 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안정적이거든요. 굳이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그 세계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니까요. 우린 더 이상 꿈을 꾸는게 신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겁니다.  


번뜩 잠에서 깨었습니다. 가슴이 쿵 하고 무언가에 짓눌린 것 마냥 답답해졌습니다. 크게 호흡을 한 번 내쉬고, 입으로 계속해서 그 질문을 되뇌었습니다.


“예은씨는 꿈이 뭐예요?”


오늘은 지난날의 저의 '꿈’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볼까 합니다. 내가 실현하고 싶었던 무엇, 희망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꿈이 없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꿈이니까요. 그 꿈을 이루는 꿈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꿈이니까요. 무서워도 괜찮습니다. 원래 꿈속에서는 현실에서는 없을 법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괴물도 나오고, 요정도 나오고 하는 겁니다. 미지의 세계는 원래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설레고 재미있는 것 또한 당연하고요. 어린아이는 무서운 게 없습니다. 무섭다 라는 개념보다는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은 '꿈'이라는 변화무쌍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그 세계에서 어린아이처럼 뛰어노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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