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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Sep 15. 2020

옷이 좋아

지극히 개인적인 패션에 관한 단상 (슈트 편)


나는 옷을 좋아한다. 연령과 시기마다 꽂히는 옷의 종류가 조금씩 달라지는 편인데, 최근 몇 년간 가장 애정 하는 건 단연 셋업 슈트다.


팬츠로 된 슈트, 스커트로 된 슈트 등 상 하의를 맞춰 입었을 때의 묘한 쾌감이 좋다. 그래서 최근 나의 옷장에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요즘 중요한 꾸안꾸 느낌을 가장 쉽게 낼 수 있기도 하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차려 입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슈트의 장점이다. 그래 봤자 5벌 정도가 전부이지만, 하나 둘 색깔별로, 디자인 별로 모으는 재미가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이 사재끼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 맞춤 슈트를 주문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혼자 상상해보기를 나중에 웨딩 사진을 찍는다면 드레스보다 흰색 슈트를 입고 찍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하기도 했다.
 
 옷을 애정 하는 나로서, 패션에 투자하는 시간적 비용이나 경제적 비용 또한 상당한 편이다. 그렇다보니 틈만 나면 쇼핑 어플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면서 사고 싶은 옷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 중에 하나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고 민감했다. 한 때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시절도 있다. 상상 속에서 원하는 옷을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장래희망 첫 번째 순위에 들기 충분했다. 어릴떈 쥐꼬리만 한 용돈으로 패션 잡지를 사서 나만의 코디북을 만들었던 기억도 있고, 하루는 입고 나간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루 종일신경이 쓰여서 지나가다 보이는 옷 가게에서 옷을 사서 갈아입은 적도 여러 번있다. 친구는 이런 나를 보고 유별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생긴 습관 중 하나가 자기 전에 다음날 입을 옷을 머릿속으로 코디하는 것인데, 그 날의 분위기, 만나는 사람, 기분 상태에 따라 옷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어떤 옷 입느냐에 따라 하루의 마음 상태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만큼 나에게 옷이라고 하는 것은 일상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이다.
 
 요즘엔 스커트보다는 팬츠로 된 슈트를 입었을 때의 느낌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에는 여러 이유가 따른다. 우선 슈트를입는 순간 애티튜드에서부터 차이가 생긴다. 왠지 더 당당해지는 기분이다. 어깨를 조금 더 바르게 펴게 되고, 걸음걸이도 힘차게 바뀐다. 눈빛도 조금 더 반짝거리는 것 같다. 커리어우먼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과거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슈트가 여성들의 패션 세계에 정착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여성이 처음 슈트를 입고 나왔을 때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20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여성의 권리에 대한 해방 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성 슈트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여성 또한 전쟁이나 노동에 뛰어들게 되면서 시대의 분위기에 맞물려 여성들에게도 주체적이고 생활력 강한 모습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 덕에 과거 여성들의 옷이 주로 여성의 몸의 라인을 강조하는 가슴이나 허리라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슈트는 신체적 특성보다는 옷을 통한 실용성 고급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대화가 되어서야 ‘모던걸’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슈트역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 또한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여러 풍파를 거쳐 여성 슈트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다. 지금은 여성이 슈트를 입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하나의 트렌드로 잡은 패션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옷이 날개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옷이 외모를 빛나게해 준다기 보다는옷을 입음으로 인해서 변화되는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에티튜드를 통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생기고 예쁜 사람도 지저분한 옷을 입혀놓으면 매력이 반감되기 마련이다. (몇몇 신계에 있는 예외의 사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찾아볼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보편적으로는 차림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에게 상대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데 있어서 남자건 여자건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적인 차림새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옷도 자신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 한다. 과거 여성들이 수트를 통해 주체성을 드러냈던 것처럼 옷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외적인 모습 너머의 것들을 표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옷을 입었을 때 자신의 몸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지에 대한 파악과,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성, 성격 등 내적인 모든 것들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러 부분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본다. 지나치게 외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적당한 관심과 자기 관리는 득이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잘 차려 입는다는 행위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에 보다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을 잘 관리한다. 내가 옷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비단 패션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가령 건강한 신체, 매력적인 목소리, 깊은 지식과 지혜, 긍정적인 생각 등 모두 포함된다. 패션은 그 중 하나의 카테고리일 뿐이다.
 
 그러니 한 번쯤은 깔끔히 차려 입은 슈트와 함께 하루를 보내보는 것을 추천한다.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옷 하나로 특별한 날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가치를 높힐 수 있는 하난의 방식으로, 옷을 통해 하나씩 찾아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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