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 화면 너머로 눈이 소복히 쌓인 시골의 풍경이 보였다. 뽀드득 거리는 눈밟히는 소리가 단숨에 나를 그 속으로 데려갔다. 네모난 창문으로 가득한 각진 도시와는 다르게 곡선으로만 이루어진것만 같은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말랑 말랑 마음이 일렁인다.
어느날 문득 시골의 고즈넉함이 사무치게 그리워 질때가 있다. 내 어릴적 기억의 한 조각엔, 고요하고 정겨운 시골의 풍경이 꽤나 깊이 박혀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강원도 홍천에 있었던 더라, 명절이면 큰집에 갔고 방학때면 외할머니댁으로 갔다. 차를 타고 한참을 굽이진 길을 따라 들어가면, 얕은 언덕 위에 집 두 채가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그리고는 두팔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외할머니와 할아버지 보인다. 나는 그들의 품에 속 안겨 어여쁜 손녀가 된다. 시골집 왼편에 산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냇가가 흐르고 있었고, 집과 냇가 사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거진 나무로 가득한 뒷산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훨씬 더 어릴적엔 할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자주 뒷산에 올랐다.
방학때 시골집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놀이터였다. 빠알간 고무대야는 그 어떤 장난감보다 멋진 친구가 였다. 여름이면 고무대야에 들어가 작은 폭포수를 타고 내려오는 튜브가 되어주었고, 겨울이면 완벽한 썰매가 됐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할머니 손맛이 가득한 밥을 먹고, 다시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옆집 할머니는 나의 두번째 할머니였다. 그집엔 커다란 흰둥이가 지키고 있었다. 우린 쉽게 친구가 됐다. 나는 그냥 그 곳이 좋았다. 옷이 다 더러워질때까지 놀아도 혼나지 않는곳. 큰 멍멍이가 꼬리를 흔들며 친구가 되어주던 곳. 넘치는 사랑을 주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늘 있던 곳. 구수한 소똥 냄새마저 웃으며 맡을 수 있던 곳. 끝없이 펼쳐진 논밭에 외로이 서있는 허수아비 마저 나의 친구가 되어주던 곳. 나는 그곳의 정겨움이 좋았다.
한참 놀다 흠뻑 젖은 옷을 말릴겸 큰 창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그러다 말벌에 된통 쏘여, 세상이 떠나갈듯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벌에 쏘였을땐 된장이 최고라며 손가락으로 장독대에서 된장을 듬뿍 뜨더니 내 눈가에 발라주셨다.
"할머니 이게 뭐야...냄새가 너무 이상해. 으앙"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에 입을 삐죽 내밀려 울음을 터트리다가도 이내 점점 가라앉는 눈을 보며 거울을 요리조리 살펴봤더랬다.
외할머니가 시골 집을 팔고 서울로 올라오던 날 그렇게나 서운할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게 팔려가는 기분이었다랄까. 시골의 불편함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 불편함쯤이야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하고 저녁엔 조명으로 몰려드는 온갖 나방들과 싸워야 했지만, 그럼 어때. 장날이면 시내로 나가 인심 넘치게 담아주는 맛있는 고기를 잔뜩 사와 구워먹을 수 있었고, 귀뚜라미 소리를 노래 삼아 별을보고 있노라면 그런 불편함 따위가 대수랴.
어른이 되고나서는 도시보다는 시골이 고즈적함이 더 좋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가 싫어진걸지도 모르겠다. 네모 반듯한 박스로 가득한 곳에서 일상을 구겨넣어 살아가다보면 시골의 따스함이 그리워진다. 여유로운 시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앞에는 바다와 뒤에는 산이 펼쳐지는, 파라다이스같은 곳. 어린시절의 기억이 꽤나 사랑스러워서 일까. 악몽따위는 꾸지 않던 편안함이 그리워지는걸지도 모르겠다. 맑고 순수했던 마음이 그리워지는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어른이 됐고, 녹색보다는 회색이 익숙한 도시에 살아가고있으니.
티비 너머, 아주 한적한 시골 풍경을 한참을 보다 인터넷으로 '강원도 홍천'을 검색했다. 네모 박스의 힘을 빌려 시골의 정겨움을 느껴본다. 낯선듯 익숙한 곳으로 간다. 시각과 청각을 속이는 연습을 한다. 언제 어디서든 '검색' 버튼 하나로 어디든 볼 수 있는 지금이 좋으면서도 슬프다. 아쉽게도 촉각은 되려 허전함을 느낀다. 그곳의 바람과 그곳의 공기가 보고싶다.
한참을 영상을 보다 종료 버튼을 눌렀다.
나의 감각은 여전히 할머니의 투박한 손과, 할아버지의 넓은 품에 남겨져있었다. 기억속엔 아직 그들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