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나린

첫눈이 왔다.


어릴 적 내가 물었다.

“엄마, 눈은 왜 내려?”

“하늘에서 선녀님이 뿌려주는 거야.”


아니었다. 그런 따뜻한 동화일 수 없다. 선녀님이 뿌려주는 것도 아니고, 엘사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추워서 그런 거다. 그저 세상을 떠돌던 공기가, 바람이, 눈물이 홀로 추위를 버티고 버티다 못해, 서로의 온기로 똘똘 뭉쳐도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해 무거워진 알갱이들을 땅으로 떨어트리는 거다. 그리고는 낙하하는 순간, 손에 닿는 순간, 형체를 잃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예쁜 건 아주 잠깐이다. 나에게 있어 눈은 ‘낭만’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눈이 싫다. 질척거리는 끝이 너무 별로다. 매일 밟히고 또 밟히다 결국 녹아내린다. 그 모양새가 꼭 ‘마음’ 같아서 싫다.


조건 없이 베푸는 것만큼 어렵고 위대한 게 있을까. 한없이 퍼주고 베풀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바람 빠지는 풍성처럼 마음이 쪼그라든다. 수지타산을 따지는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은 해도 욕심을 버리는 일이 가장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인간이라 손해 보는 건 죽도록 싫고, 나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는 건 더더욱 싫다. 세상은 결국 돌고 돌아서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데, 그 말만 믿고 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좁고 연약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치졸한 생각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괜히 나만 구차한 인간인 것 같아서 오늘도 세상 쿨한 척을 한다.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굴러다니는 생각의 소리들이 행여나 밖으로 새어나갈까 싶어,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더 높인다.


“나 Cool(?)해” 이것만큼 이상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게 관대해질수록 스스로에게는 치사해진다. 마음과 행동이 시원해지기는 커녕 차가워진다.


어쩌면 우린 마음에 보상을 받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물질로라도 채우고 싶어 지는 거겠지. 마음을 숫자로 환산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는 거다.

마음이 추운 거다. 녹아내리지 않길 바라는 거다.


사실, 우리 모두 서로 잘 안다. 삶을 살면서 얻어가고 있는 모든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마음이 잠시 그 사실을 잊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도 눈이 내렸다.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차가운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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