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사랑이 충만한 삶이 되게 해주세요

by 나린

이른 아침 티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울지마 톤즈> 라는 영화를 봤다. 상영 당시 얼핏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그닥 와닿지 않던 영화라 무심코 지나쳤던 것 같은데, 오늘은 무언가에 끌리기라도 한듯 침대에 앉아 한참을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와 다큐 중간 지점에 있는 이 작품은, 이태석 신부가 가난과 전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작은 마을 수단 톤즈에서 보낸 그의 생을 담은 영화다. 잔잔한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뭐랄까.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묵직함에 보는 내내 힘들었다. 그럼에도 채널을 돌릴 수 없던 이유는 이태석 신부와 톤즈 마을 사람들의 끈끈함을 넘어선 관계성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이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만들었다.


수단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시련에도 잘 울지 않는 다고 한다. 먹기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고, 매일같이 총성이 울리는 전쟁이 삶 자체인 그들에게는 우는 것 조차 사치인것이다. 메마른 눈물은 자신들의 운다고하여 현실을 변화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그들이 이태석 신부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전쟁의 상흔으로 모든 군중의 모임이 금지된 도시에, 그의 죽음을 기리고자 하는 행렬에는 그 어떤 군인의 제재도 없었다.


고요함이 가득한 방 안에서 까만 스크린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나는 침대에 엎드려져 힘겹게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눈이 탱탱 붓도록, 세상이 떠나갈듯 울었다. 난 가끔 왜 하늘은 반짝 반짝 빛나는 이들을 먼저 데려가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한다. 모두 신의 뜻이라고 해도, 가끔은 원망스럽기도하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전형적인 신파 스토리라고 하겠지만,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분명 그의 삶이 전해주는 메세지가 있었다. 이 땅에는 한번씩 이런 사람이 나타난다. 보통의 인간으로서 가능한 희생의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 감히 이해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 나는 무엇이 그들의 삶을 이끄는지 궁금했다. 단순히 종교적인 신념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하나님을 찾으며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나는 그렇게 신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학창시절 부모님을 따라 다닌 교회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현듯 기도가 하고 싶어질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날이다.


나즈막히 마음속으로 두 문장을 읖조렸다.


"저의 나약함에 무너지지 않게 해주세요."

"부디, 사랑이 충만한 삶이 되게 해주세요."


나는 영화 속의 누군가처럼 희생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흔들림 속에 사랑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공통되게 전하는 단 하나의 메세지. 그것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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