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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Apr 27. 2021

스위트홈에 대한 단상

인간의 욕망에 대하여

모처럼 쉬는 주말. 대낮부터 커튼을 치고 기네스 맥주  캔을 들고와 넷플릭스를 켰다. 평소라면 절대 쳐다도 안볼 하드한 크리쳐물 <스위트 > 보기로 했다.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괴물이 된다라는 소재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리모콘을 쥐고있는 손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보던 중 호흡 곤란으로 뛰쳐나간 기억에 다시금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보기로 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동생에게 같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공부하기에도 바쁜 그는 당연히 거절이었다. 맥주 한 캔을 더 꺼내왔다. 알콜의 힘을 빌리면 갑자기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니, 과감히 재생버튼을 눌렀다. 리듬감 넘치는 힙합 비지엠이 이질적인듯 적절히 그들의 연기와 함께 어우러졌다.

드라마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아파트에 고립된 사람들로 가득찬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든 괴물이 될 수있고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누군가는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들을 구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생각을 알 수 없는 눈빛과 의미심장한 행동, 과연 그들은 누구를 믿을까,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갑자기 괴물이 된다. 순수한 욕망을 가진 현수와 아이를 살리고자 했던 엄마만이 자신의 괴물화를 컨트롤했다. 선한 욕망을 가진자만이 괴물화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괴물이 된 인간과 괴물이 되지 않은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어른과 아이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인간에게 욕망이란 무엇인가. 나는 선한 욕망도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간에게 욕망이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는 확실하다. 그러나 여전히 욕망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지금껏 어둠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 대부분이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욕망의 이중적인 의미.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인간은 여전히 선과 악의 대립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계속한다.

인간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는, 내적 욕망을 기반으로 한다. ‘욕망’자체는 선과 악의 개념으로 나눌 수있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며, 정의내릴 수 없는 ‘무’에 가깝다. 단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냐에 따라 그 후에 선과 악의 기준으로 나눠지고 수식어가 붙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인간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고, 알아차리더라도 어떠한 결과, 즉 행위가 발현된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점에 있다.

쿵. 쿵. 괴물들의 괴성과 발소리가 마치 우리가 삶을 잡아먹는 것 처럼 느껴졌다. 잔인하고 어두운 영화 속에서 나는 왜 서글픔이 느껴졌을까. 왜 눈물이 났을까. 극한의 상황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인한 여러 모습. 마치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는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 이전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알아차릴것인가. 어쩌면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순간에 이미 괴물이 되어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묻는다.

“당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욕망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꽤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왜인지 오늘 밤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할것 같다. 맥주 한 캔을 더 깠다. 그들의 끝은 어떻게 될까.

“스위트홈, 달콤할수록 무서운.”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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