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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y 31. 2022

나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엔 '부족함'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부족함보다는 '자신감'이라는 단어와 더 가까웠다. 그것은 일종의 어린날의 패기를 대변하기도 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나의 세상에는 오롯이 나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유별나고 까탈스러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스스로의 부족함을 부쩍 자주 느낀다. 그렇다고 자존감이 낮아졌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다. 정말 단어 그대로 나의 부족함이 눈에 보인다는 의미다. 가장 많이 느낄 때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나서인데, 이런 감정은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도 좋을 일 일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자신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시선을 확장해서 타인의 관점까지 이해하고 알아차리는 일을 생각보다 어렵다. 그것은 지식의 앎을 넘어서 그 너머의 것을 읽어내는 힘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지금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비슷한 의미로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보다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것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이 지구별을 하나의 드라마라고 본다면, 지금까지는 나만이 주인공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의 삶에서 모두가 주인공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가는데 무언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또 직면한다. 그래서 얼마 전 강의에서 반짝이는 눈빛과 열정이 넘치는 몸짓으로 경청하던 이들의 에너지가,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채찍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인데 그 위에 누군가의 믿음이 얹어질 때 생기는 책임감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더욱이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부디,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 일에 진심을 담아,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해, 이 마음이 녹슬지 않도록 잘 보살피고 싶다.


이전에 내가 감히 용납할 수 없었던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마주하는 것은 내가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 이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나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이 내가 살아가고자하는 삶이라 하는 것뿐이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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